삼국시대 아차산성의 주인 밝혀 낼 증거 발견

6세기 후반 신라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 확인
문헌상 백제 성으로 추정하지만 고구려 기와 조각도 발견돼
  • 등록 2017-12-14 오전 9:36:26

    수정 2017-12-14 오전 9:36:26

서울 광진구 광진동 아차산성 일대 전경 사진(사진=광진구청)


[이데일리 채상우 기자] 삼국시대 산성인 서울 아차산성에서 6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집수시설이 확인됐다.

광진구와 한국고고환경연구소는 서울 광진구 광진동 아차산성 남벽과 배수구 일대 1900㎡ 구역에서 3차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물을 모으기 위해 마련한 집수시설을 발견했다고 14일 발표했다. .

통일신라시대 문화층(특정 시대의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 아래에서 나온 이 집수시설은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계곡의 중앙부에 만들어졌다. 집수시설은 먼저 땅을 파낸 뒤 물이 새지 않도록 벽면에 점토를 부착하고 20∼90㎝ 길이의 석재를 쌓아 축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남아 있는 석축은 남쪽이 10.2m, 동쪽이 10.3m, 서쪽이 5.7m이며 깊이는 1.6m이다. 남쪽과 서쪽 석축은 각각 11.3m, 8.9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전반적으로는 사다리꼴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조사단은 집수시설의 규모와 형태로 미뤄 물을 저장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성안에서 내려오는 물을 일시적으로 머물게 해 안정적으로 배출하는 시설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집수시설의 개흙층에서는 목기, 씨앗과 함께 삼국시대 목간 한 점이 출토됐다. 목간은 길이 13.5㎝, 상단 폭 3㎝, 하단 폭 1.5㎝, 두께 1.2㎝ 크기다. 목간의 앞쪽에서는 묵서의 흔적이 확인됐으나, 적외선 촬영을 통해서도 글자가 판독되지는 않았다.

조사단 관계자는 “삼국시대 목간은 하남 이성산성, 인천 계양산성 등 한강 이남에서 나온 적은 있지만, 한강 이북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며 “신라의 목간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집수시설의 주변 지역에서는 2차 조사 때처럼 고구려 기와 조각을 수습했다. 아차산성은 475년 백제 도성이 고구려군의 공격으로 함락됐을 당시 개로왕이 죽임을 당한 곳이자 삼국시대의 주요 격전지였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1km를 조금 넘는다.

문헌상으로는 백제가 지은 성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1997년과 1999년 발굴조사에서는 주로 신라가 쌓은 성벽과 관련 유물이 발견됐다. 광진구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2015년 아차산성 발굴을 재개했고, 작년에는 고구려의 군사시설인 홍련봉 보루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사한 연화문 와당과 글자가 새겨진 명문기와 등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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