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71년 여정, 'DJ 장남' 김홍일 별세…이낙연·문희상·유시민 등 추모 물결(종합)

김홍일 전 의원, 20일 향년 71세 나이로 별세
박지원 "고인, DJ 정치적 동반자"·조국 "야만의 시대 돌아본다"
고인, 3선 의원 역임했지만 DJ 아들이란 이유로 수난
두 번에 걸친 군사정권 고문, 파키슨병 얻어
  • 등록 2019-04-21 오후 3:44:04

    수정 2019-04-21 오후 5:36:40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이 20일 오후 5시께 별세했다. 향년 71세. 사진은 1982년 12월 고 김대중 대통령이 형집행 정지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하자 병실로 향하는 김 전 의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경훈 기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20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현대사를 관통하는 굴곡진 인생사를 보낸 김 전 의원에 여야 정치권은 애도를 표시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의 자택 관리인은 이날 오후 4시 8분 서울 서교동 자택 안방에서 쓰러진 김 전 의원을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이후 김 전 의원은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오후 5시 4분 사망판정을 받았다. 고인은 4일간의 가족장 후 23일 광주 5.18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고인 애도

정치권에서는 고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여야를 가리지 않고 애도 표시가 이어졌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김 전 의원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헌신해왔다”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21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박 의원은 “고인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동지였다”며 “유지를 받들어서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관계 개선, 햇볕정책을 계승·발전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하겠다“고 애도를 표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 세대가 겪었던 ‘야만의 시대’를 다시 돌아본다”면서 “시대는 변화했지만, 그 변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남겨진 상흔은 깊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야권도 추모에 나섰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김 전 의원의 국가를 위한 애국심과 생전 의정활동에 대해 알고 계시는 많은 국민들이 크게 안타까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김 전 의원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거목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의 역경과 고난을 함께 한 분”이라며 애도했다.

장례 첫날 빈소는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공식 조문인 10시 전부터 검은 옷을 입은 조문객 20여명이 빈소를 찾았다. 이들은 붉어진 눈시울로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의 동생인 김홍업 전 의원도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드나들었다. 가족과 측근들은 병세가 위중한 이희호 여사에게는 고인의 별세를 알리지 않기로 했다.

이밖에 고인의 마지막을 기리기 위해 이낙연 국무총리, 문희상 국회의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 씨,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를 비롯한 전현직 정치인 등이 빈소를 찾았다.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가운데)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 노건호 씨(오른쪽)가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홍일 전 의원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의 아들은 멍에요, 불행”

고인의 삶은 ‘굴곡’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된다. 김 전 의원은 지난 1996년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남 목포·신안갑 당선을 시작으로 내리 3선을 했다. 다만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고인은 1974년 8월 15일 김구 선생의 경호실장 윤경빈씨의 딸 혜라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야당 지도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마흔이 넘도록 변변한 직업조차 가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진 고문을 받아 장애를 얻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1971년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선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1980년 다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때 허리와 목을 크게 다친 고인은 파킨슨병을 얻어 보행조차 불편한 삶을 살았다.

2006년에는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1억 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유죄를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김 전 의원은 2007년 2월에 특별사면 됐지만 이후 공식 석상에서는 거의 나서지 않았다.

이후 김 전 의원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빈소를 찾았을 때다. 병세가 짙어진 김 전 의원은 몰라보게 수척해졌으며 휠체어를 탄 채 힘겹게 조문객을 맞았다.

김 전 의원은 2001년 펴낸 자전적 에세이집 ‘나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는다’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고인은 “대통령 아들은 영광이 아니라 멍에요, 행복이라기보다는 불행”이라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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