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중국 정부의 대리인인 그가 고개를 숙인 것은 720만 홍콩시민 중 100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사상 최대 시위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정치·외교적 부담이 커진데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중국정부의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연기가 아닌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어 갈등이 해소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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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송환법 연기 결정은 사태 수습이 먼저라는 중국 정부의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16일 중국 신화통신은 전날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정부는 송환법 추진을 보류한 홍콩 특별행정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겅 대변인은 “중국 중앙정부는 홍콩 특별행정구에 대한 지지와 존중, 이해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람 장관이 법 추진을 중단을 결정하기 전 한정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났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16일 보도했다. 한 상무위원은 홍콩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법안 연기 결정에 관여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중국 정부 입장에선 이달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반인권 국가로 낙인찍혀 비난 받는 사태를 피하고 싶은 시진핑 주석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정부가 대만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있다. 2020년 대만 총통 선거가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홍콩의 대규모 시위로 대만에서도 반중(反中) 기류가 커지는 점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대만 민진당의 당내 경선에서는 차이잉원 현 총통이 후보로 결정됐다. 차이 총통은 강경 독립파로 중국 정부로선 눈엣가시 같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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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홍콩 정부의 송환법 처리 연기 결정에도 불구하고 내분이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람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법안의 허점을 막기 위해 현단계에선 개정안을 완전히 철회할 수 없다고 본다”며 어떤 형태로든 법 개정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16일에도 홍콩 시민 수십만명이 시위를 계속한 것도 이 같은 람 장관의 발언 때문이다. 이날 집회에서 시민들은 법안의 완전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 추진을 반대하며 고공 농성를 벌이다 투신해 숨진 시민 량링제(35)씨를 추모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고 시위를 벌였다.
량씨 전일 홍콩 쇼핑몰 퍼시픽플레이스 4층 난간에 ‘범죄인 중국 송환 반대’ ‘중국 송환 전면 철회’ ‘람 장관 사임 요구’ 등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걸어두고 “캐리 람이 홍콩을 죽이고 있다”고 쓰인 노란 비옷을 입은 채 농성을 벌였다. 량씨는 경찰이 진입하자 난간 밖으로 투신해 사망했다.
홍콩 교원노조는 17일 예정했던 파업 대신 흰 옷을 입고 교단에 서는 방식으로 송환법 반대 시위를 이어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