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피플]시리아서 숨진 종군기자 마리 콜빈

콜빈母 "전쟁기사 위해서라면 목숨 아까지 않아"
스리랑카 내전 취재중 눈 잃어..카다피 단독인터뷰도 해
  • 등록 2012-02-24 오후 3:02:34

    수정 2012-02-24 오후 3:15:22

[이데일리 양미영 기자] "전쟁터의 그림뿐 아니라 이야기를 담으려 했던 아이였어요. 그래서 상황이 심각해진 시리아에 머물려 했을 겁니다." 지난 21일 시리아에서 취재 도중 목숨을 잃은 영국 선데이타임스 기자 마리 콜빈(56)의 어머니의 말이다.

▲ 마리 콜빈
레미 오슐리크 프랑스 사진기자와 함께 시리아 반군 거점인 홈스에서 사망한 콜빈은 시리아 상황이 악화되면서 현장을 떠날 것을 지시받았지만, 하루만 더 머물겠다고 밝힌 날 임시 미디어센터에 날아든 포탄에 변을 당했다.

22일(현지시간) 콜빈의 어머니인 로즈마리 콜빈은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개 있고 단호한 성격의 딸을 회상했고, 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평소 콜빈의 성품을 알기에 콜빈이 시리아 탈출을 늦출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콜빈 기자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 많고 남자 형제들과 어울려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 활달한 아이였다. 콜빈의 어머니는 "반전과 여성 인권운동이 분위기가 강했던 1960~1970년대를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제 관심을 뒀고 기자가 되려 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콜빈은 특히 공화당 출신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자택이 뉴욕주 새거모어에 있던 탓에 보수주의 풍토가 강했던 지역에서 민주당 정책활동에 열성을 보였다. 오이스터베이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베트남전을 반대하며 사위대로 나서기도 했다.

예일대에 들어가 인류학을 전공했지만,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존 허시의 문학 수업을 수강했고 대학신문에서 일하며 기자의 꿈을 꿨다. 결국 대학을 졸업한 후 UPI통신 뉴저지 지사에 들어간 뒤 워싱턴과 파리 지사를 거친 후 영국 선데이타임스에 들어갔다. 이후 콜빈의 화려한 종군 기자 인생이 시작된다.

▲ 체첸분쟁 취재 당시 마리 콜빈
그는 최근 리비아와 이집트는 물론 걸프전과 체첸 분쟁, 코소보 내전, 스리랑카 내전 등 전쟁터를 누볐다. 특히 2001년 스리랑카 내전 당시 왼쪽 눈과 청력을 잃고부터 눈에 안대를 하고 다녔고,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와 단독 인터뷰를 한 후 `미친개와 나`라는 책도 출간했다.

1990년 동티모르에서는 유엔(UN)이 난민들을 인도네시아군에 넘기려 하자 이에 항의하며 수백 명의 목숨을 구했고, 그루지야 내전 당시 반군과 함께 험준한 산을 넘어 탈출한 일화도 유명하다.

이번에도 콜빈은 시리아 상황이 위험해진 것을 알면서도 마쳐야 할 기사가 있다며 또다시 모험을 감행했지만 유명을 달리했다. 콜빈의 어머니는 "딸을 위험한 지역에서 떠나도록 설득하는 것은 항상 무의미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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