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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권오석 기자] 국내 반도체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반도체 경기를 가늠할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이 최근 감소세를 보인 것과 관련, 반도체 경기가 하락하는 신호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 두달째 하락세
10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5월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은 17억 3545만 7000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6.6% 감소한 수치다. 2016년 7월에 전년 동월과 비교해 19.4%가 감소한 이후 전년 동월대비 장비 수입이 하락한 것은 1년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지난달에도 감소세가 이어졌다. 지난달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은 14억 2990만달러를 기록, 지난해 같은 달보다 34.6%나 줄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 수입 증가율이 전년 동월대비 1월은 112.2%, 2월 102.1%로 꺾였다. 이어 3월 29.1%, 4월 51.9%로 낮아졌다. 그러다 5월부터는 본격적인 감소세로 돌아섰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은 반도체 경기와 관련, 하나의 지표 역할을 한다. 국내 반도체 시장이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들이 반도체 경기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면 자연스레 반도체 제조 설비를 늘리기 위해 제조용 장비 수입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면서 중국의 한국 반도체 수입도 함께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중국은 2025년까지 1조 위안(한화 176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자급률을 현 10% 정도에서 7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한국 반도체 산업이 중·장기 차원의 위기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반도체 업계 “불황 신호 NO… 중국 투자 기대할만”
다만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현장에서는 계약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등 아직까지 ‘적신호’가 켜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제조용 장비 수입 수치만으로는 반도체 경기를 예단할 수 없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반도체장비를 생산하는 A사 임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제조회사들은 지난해와 2016년에 이미 예년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금액을 투입해 장비를 수입했다”며 “당시 마련한 장비들을 올 들어 가동하면서 본격적으로 물량을 늘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4차산업혁명 등 반도체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며, 이에 따라 올 하반기에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도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여기에 중국의 ‘반도체 굴기’ 펀딩도 끝나지 않았다. 미국의 반도체 조사 전문기관 ‘VLSI리서치’ 등 여러 조사 결과로 보아 올해까지는 우(右)상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장비업체 B사 관계자는 “현재까지 반도체에서 불황 조짐을 느끼는 건 없고, 있다 하더라도 일시적일 것”이라며 “전방산업 반도체 대기업들이 투자를 취소하거나 지연하는 경우는 현재까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반도체 시장은 제조용 장비 수입 외에도 호황·불황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매우 많다”며 “중국에서 국내 반도체 시장에 투자를 많이 한다고 하니 아직은 두고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2016·2017년 장비 수입이 예년에 비해 많았고, 반도체 장비기업들은 예년 수입 물량을 바탕으로 올해 숨고르기를 하는 양상”이라며 “반도체는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에 무역전쟁으로 반도체 투자가 줄어든다고 볼 수 없고, 올해 장비 수입이 일시적으로 줄었으니 내년에는 다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