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중국은 하고 한국은 못하는 일

  • 등록 2018-09-10 오전 11:03:29

    수정 2018-09-10 오전 11:04:45

제21호 태풍 ‘제비’가 강타한 일본 간사이공항에 밤새 고립됐던 승객들이 지난 5일(현지시간) 인근 육지인 이즈미사노 시(市)로 이동하기 위해 특별 수송 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이성재 디지털미디어센터장]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부끄러웠다.” 지난 4일 서일본의 관문인 간사이공항이 태풍 ‘제비’로 침수·폐쇄되면서 32시간이나 고립됐다가 간신히 구조된 한 여행객의 말이다. 당시의 현장상황을 알고 싶어 수소문 끝에 만난 그는 그날의 악몽보다 “대한민국에 배신을 당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전상태에서 바깥세상과 고립된 채 생수 한 병과 담요 한 장으로 버티며 구조될 시간만 기다렸다고 했다.

5일 오전 6시부터 간사이공항으로 들어가는 통제가 풀리면서 구조가 시작됐지만, 아수라장이 된 공항을 빠져나오려는 3000여명의 여행객으로 인해 또다시 사투를 벌였다고 했다. 누구 하나 현장상황을 설명해주는 사람 없이 12시간을 기다려 겨우 배를 타고 빠져나오면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고 했다.

‘짱깨 나라’라고 비하하기도 했던 중국에서는 영사관 직원들이 공항에 나와 급파한 탈출용 차량에 자국민을 모두 태워 피신시키는 광경을 목격하곤 허탈감에 빠졌다고 한다. 그가 경험한 32시간의 고통은 30여년을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6일 일본 홋카이도를 덮친 강진으로 섬 전체가 ‘블랙아웃’이 되면서 4000여명이 넘는 한국 여행객들은 어둠을 뚫고 안전한 곳으로 탈출해야만 했다. 주변 편의점에서는 일찌감치 건전지와 생수, 식료품이 동났고, 안전한 숙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일본 정부가 피난소로 정해준 곳조차 사전 안내가 부족해 몇 곳을 돌아다닌 끝에 찾아낼 수 있었다.

7일 당시 일본에 머물며 훗카이도 상황을 전해온 여행객 김도연 씨는 “삿포로 총영사와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홈페이지의 피난소 안내나 교통상황도 제때 올라오지 않아 불편했다”며 “자국민 보호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영사업무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4000여명이 넘는 여행객들은 총영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피난소 공지에 따라 하코다테시립 치요가다이·아오야나기초등학교, 삿포로 나카지마체육센터, 오도리고등학교 등으로 분산수용됐지만, 한국 정부의 손길은 느낄 수 없었다.

지난 한 주간 일본은 태풍과 지진으로 아비규환에 빠졌다. 마을 하나가 지진으로 통째 사라졌고 1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일본 열도는 충격에 빠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을 여행 중인 우리 국민에게는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우리 국민에게 사고라도 났다면 어땠을까. 해외여행이나 자주 출장을 가는 사람이라면 ‘자국민 보호는커녕 오히려 외면하는 재외공관을 왜 두나’ 싶은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번 재난사태만 봐도 그렇다. 물론 천재지변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쳐도, 현장에서 고통을 당한 사람들로선 재외공관의 존재의미를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외교부 해외안전지킴센터 측이 “각 재외공관에서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직원이 한두 명뿐이다 보니 큰 사고가 나면 경험부족에 따른 적극적인 대응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실토할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연례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재외공관이 갑질하거나 군림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며 재외국민의 안전과 권익을 최우선시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추락을 거듭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국민임을 부끄러워한다면 재외공관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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