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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현규 박순엽 기자] 최근 수도권의 한 어린이집에서 6살 남아 A군이 5살 여아를 밀친 뒤 자신의 바지를 벗으려고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군은 “TV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침대로 밀치면서 바지 벨트를 푸는 장면을 보고 따라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A군과 피해 여아는 아동 심리 센터를 찾았으나 여아는 남아의 이러한 행동에 장기간 심리 상담을 받아야만 했다.
유치원·어린이집 내 또래 간 아동 성폭력 발생 건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으나 이를 사전 방지·사후 관리할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사이 피해 아동들은 성적(性的) 트라우마를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가해 아동이 ‘모방 행동’을 통해 성폭력을 저지른다고 분석하면서 가족 등 아동 주변인들의 집단 상담을 통해 또 다른 피해를 막고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제대로 대응 못하는 사이…피해자는 ‘트라우마’
그만큼 교육 현장에서의 지도나 교육이 중요하지만, 정작 유치원·어린이집 등 교육 시설에선 또래 간 성폭력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에선 가해자가 아동이더라도 성폭력 사건이 의심되면 유치원 등이 나서 즉시 신고하고, 아동들에게 성폭력 예방·대처 방법을 교육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이러한 매뉴얼이 잘 지켜질 수 없다고 말한다. 4년차 보육교사 김모(36)씨는 “아이들은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것조차 잘 모르는데다가 모든 원아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아동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다고 해도 신고보다는 피해·가해 아동 학부모에게만 전달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털어놨다.
그 사이 또래 간 성폭력에 피해를 입은 아동들은 우울감, 이성 혐오, 대인관계 기피, 신체 접촉 거부 등 여느 성폭력 피해자들과 똑같은 트라우마를 겪는다. 최근 또래 간 성추행에 피해를 입은 딸의 아버지가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도 “(사건 이후) 딸은 어두운 곳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밤엔 ‘하지마’, ‘싫어! 안 해!’라는 잠꼬대를 연일 하는 등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아동 심리 센터 ‘향기나무’의 최문정 상담사는 “장난으로 치부될 수 있는 또래 간 성폭력의 피해는 성인 가해자로부터 당한 것만큼이나 피해 아동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준다”며 “극단적으로 이성을 싫어하거나, 누구도 신체를 만지지 못하게 하는 등의 심리 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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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미디어에서 모방했을 가능성”…가족 상담 필요
전문가들은 또래 간 성폭력을 단순한 장난 또는 성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습으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가해 아동들이 이러한 행동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등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아동 심리 전문가들은 가해 아동이 가족, 미디어에 나오는 모습을 모방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아동 심리센터에 접수된 상담 사례를 살펴보면 △성인물 △부모의 대화 등을 통해 가해 아동이 성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보고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아울러 아동 교육계는 피해 아동에 대한 전문적인 트라우마 치료와 함께 주변 상담을 통해 가해 아동에 대한 심리·행동을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김호연 공공운수노조연맹 보육의회 의장은 “가해 아동의 가정환경, 심리(결핍) 상태 등을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가족 등 주변인 상담을 함께 해야 또 다른 또래 간 성추행을 막을 수 있다”면서 “정부와 교육당국은 피해 아동의 트라우마 치료뿐만 아니라 가해 아동의 주변 환경을 조사하면서 예방책을 마련하는 데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