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계좌 금지? 금융실명제 최대 아이러니"

20년간 갑론을박..법 개정해도 규제 방법·실익 '미지수'
  • 등록 2013-08-06 오후 6:17:16

    수정 2013-08-07 오전 8:20:05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사실 금융실명제법 도입 20년간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차명계좌에 있다. 제도 도입때부터 고민해왔지만, 실질적으로 차명계좌를 걸러낼 방법이 없다. 이게 가능하다면, 금융실명제법이 아니라 금융실소유거래법으로 바뀌어야 한다.”

최규연 저축은행중앙회장(금융실명제 도입 당시 재무부 사무관)
꼭 20년전 금융실명제법안을 주도했던 인물중 하나인 최규연 저축은행중앙회장(사진)은 이렇게 운을 뗐다. 금융실명제법 자체가 가명·도명·무기명 등의 거래를 차단하고 ‘실제이름’으로 거래하게끔 하는데 가장 큰 방점을 뒀다는 설명이다. 금융거래 당사자가 가명의 홍길동이 아닌 실존 인물인지 여부가 중요할 뿐 그 사람이 가져온 예금이 본인 것이냐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금융실명제는 1993년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첫 도입됐다. 1982년 5공화국 시절 장영자 이철희 부부 어음사기 사건이 터진 지 꼭 11년 만이다.

제도 도입 당시엔 관료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치열했다. 과연 차명계좌를 허용할 경우 금융실명제 도입의 실효성이 있느냐는 게 핵심이었다. 최 회장은 “재무부 사무관 시절이던 당시 차명거래를 원천 금지할 수 없다는 점을 내부 관료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데도 상당 시일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1983년 금융실명제를 전격 도입하기로 했던 전두환 대통령은 1986년이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날을 실명제 시행일로 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노태우 대통령 역시 1988년 취임 후 금융실명제 실시단을 구성하기도 했지만, 곧 유야무야되며 금융실명제법은 좌초됐다.

그러던 중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각종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이 차명, 무기명 거래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고, 금융실명제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확대되기에 이른다.

금융실명제 도입을 염원하는 국민적 바람이 컸던 만큼 이를 준비했던 실무자들은 더더욱 차명계좌, 차명거래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할 수 없었다. 그럴 경우 금융실명제 도입 효과와 정착에 해가 될 것으로 판단한 영향이다. 실무자들도 차명거래 원천 금지 방안에 대해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세부적인 내용까지 검토를 거쳤지만, 결국 실질적으로 금융기관이 실소유권 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차명계좌에 대해선 한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최 회장은 “당시 은행·보험·증권사 대표들을 불러 ‘금융실명제가 차명거래, 차명계좌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이를 대내외적으로 공표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정치인·언론 등 대다수가 ‘금융실명제=차명거래 금지’로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준비했던 관료들에게 대놓고 묻지도 않을 정도였다. 당시 사무관이던 최규연 회장은 이같은 차명계좌 관련 상황을 금융실명제 도입 20년간 최대 아이러니로 꼽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차명계좌를 활용한 저축은행 비리 규모만 6조7546억원에 달하고 있다. 국세청이 파악하고 있는 차명재산도 2011년 기준 4조7344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약 270조원으로 추산되는 지하경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최 회장은 “금융실명제 도입 이후 20년간 수차례 차명거래, 차명계좌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금융실명제는 그 자체로 충분히 역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만약 불법·범죄·탈세가 발견될 경우 검찰 수사나 세무조사를 할 수 있게끔 하는 최소한의 툴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의원입법안 대부분이 금융실명법상 차명거래, 계좌에 대한 금지를 명시화하자는데 무게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개정을 하더라도 규제할 방법과 실질적 규제 실익이 없다는 데 있다.

금융실명제법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1993년 제정된 금융실명제법이 금융회사에 실명확인 의무를 부여했고, 현재 자금세탁 방지 등을 위한 FIU법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조세범처벌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의 하위법령으로 불법에 대해서 처벌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실명제법 개정시 대다수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판단할 뿐 아니라 가족간 거래, 계, 친목모임 등 선의의 차명거래 피해자가 양산되는 문제도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법 체계상 일반법인 금융실명제법을 비롯해 FIU법, 조세범처벌법,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상속증여세법 등으로 불법사항이 적발될 경우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며 “현재 논의중인 차명거래, 차명계좌 차단에 대의적으로 공감하지만, 개정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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