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1兆 신기루’에 발목 잡힌 이랜드

이랜드, 주얼리 사업부 계열사에 매각
기존 투자 자금 상환에 활용될 듯
1조원 투자 유치 계획 발표 후 난항
  • 등록 2018-12-13 오후 4:19:04

    수정 2018-12-26 오전 11:05:44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랜드그룹의 자금조달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국내외 투자기관으로부터 순조롭게 수천억원의 자금을 끌어오는가 싶더니, 1년 만에 이를 갚기 위해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봉착했다.

이랜드그룹의 유일한 상장사인 이월드(084680)는 최근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해 각각 1100억원, 총 22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기로 결정했다. 이월드는 이 자금을 활용해 이랜드월드의 주얼리 사업부를 인수할 방침이다.

이번 인수합병(M&A)은 공식적으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룹 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다소 복잡하다.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만큼 향후 투자자가 이월드 경영권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럼에도 이러한 M&A를 단행한 것은 이랜드월드가 ‘급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랜드월드는 주얼리 사업부 매각 자금을 메리츠금융과 앵커에쿼티 등 기존 투자자에 대한 상환 작업에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자금 상환의 압박에 못이겨 알짜 사업부를 내놓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주요 사업부를 떼어낸 자금을 성장자금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임시방편으로 사용되는 난해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랜드그룹의 섣부른 의사 결정이 나은 결과물이라는 게 투자은행(IB) 업계의 중론이다. 지난 2013년 부채비율이 400%에 육박했던 이랜드그룹은 대대적인 재무 정상화 작업에 나선 바 있다. 그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이랜드는 티니위니와 모던하우스 매각, 이랜드리테일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 등을 통해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면서 지난해 말 부채비율이 198%까지 낮아졌다. 신용등급 개선으로 자금 조달에 숨통이 트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

이 과정에서 자심감을 얻은 이랜드그룹은 좀더 욕심을 부렸다. 국내외 사모펀드로부터 총 1조원의 자금을 끌어모아 부채이율을 두자릿수까지 끌어내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자충수가 됐다. 호기롭게 1조원을 모으겠다고 나섰지만, 시장의 시선은 생각처럼 우호적이지 않았다. 결국 후순위(고위험·고수익) 투자 형식으로 5000억원을 모았을 뿐, 투자 구조를 완성시킬 중·선순위 투자자를 찾지 못한 것이다. 투자가 완벽하게 종결되지 못하자 투자에 나섰던 메리츠금융과 앵커에쿼티 역시 투자자금 회수에 나섰고,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 됐다.

1조원 유치 계획을 밝히고 이랜드에게 남은건 메리츠·앵커에게 지급할 수백억원 가량의 이자와 투자 유치 실패에 따른 시장의 부정적 인식 뿐이다. 자금 상환마저도 여의치 않아 아직 2000억원 가량의 자금이 더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랜드를 지켜봐 온 IB업계 종사자들은 이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고 있다. “만약 1조원 유치 계획만 발표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다. 구체적인 방안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발표를 먼저 하다보니 쫓기듯 유치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나쁜 조건을 수용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이랜드그룹은 점차 정상화되는 과정에 있었고 굳이 1조원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이러한 계획을 세운 것이 의아했다”며 “결과적으로 이랜드는 그 발표 이후 여러 방면에서 손해만 보고 얻은 것이 없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시장과의 소통보다는 내부 결정을 밀어붙이는 방식의 이랜드의 스타일이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랜드는 아직도 회사 자금 흐름 정상화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많이 남아있다. 이랜드리테일을 비롯한 이랜드월드 주요 사업부문의 상장이나 유휴자산의 매각 등이 바로 그것이다. 부디 이랜드가 앞선 실패처럼 ‘섣부른 판단’으로 큰 그림을 망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지금은 과감한 결정보다는 시장과의 충분한 소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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