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위기 이유로 통상임금 지급 못 막는다…노동자 편에 선 법원

法, 기아차 노동자 통상임금소송서 일부승소 판결
최근 대법원 판례 적용해 사측의 '신의칙' 항변 배척해
13년 대법원 판례 이후 하급심서 엇갈린 판단에 혼란 지속
대법원, 최근 임금청구 거부사유인 신의척 적용 제한 제시
명확한 경영상 어려움 판단 법적기준은 여전히 없어
  • 등록 2019-02-22 오후 4:57:51

    수정 2019-02-22 오후 4:57:51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 강상호 지부장과 노조원들이 통상임금 소송 항소심 결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고법 민사1부는 기아자동차 근로자 가모씨 등 2만 70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이승현 노희준 기자] 기아자동차(000270)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소송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승소한 것은 사측이 주장하는 경영상 어려움 혹은 위기를 좁게 해석하는 최근 법원 판단기조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대법원을 중심으로 회사의 경영부담 보다 노동자의 임금지급을 더 중요시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어 향후 다른 기업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노동자 측에 유리판 판세가 점쳐진다.

法 “신의칙 적용한 법정수당 청구 배척은 신중·엄격해야”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윤승은)는 22일 기아차 노조원 2만 70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1조 926억원 상당의 임금청구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1심처럼 상여금에 대해 근로대가로 지급된 것으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된 임금이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1심과 달리 중식비와 가족수당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실제 지급 금액은 원금 기준으로 1심의 3126억원에서 2심 3125억원으로 1억원 가량 줄었다. 이 사건은 청구금액이 1조원대인 데다 대형 사업장인 기아차 직원들이 대규모로 참여해 그 결과를 두고 주목을 받아왔다.

관심을 모았던 회사의 ‘신의성실의 원칙’ 항변은 2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 측은 당초 노조와의 임금계약 내용과 달리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법정수당을 다시 산정하면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으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거나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항변했다. 2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지난 14일 대법원의 인천 시영운수 임금청구소송 사건의 판결요지를 인용하며 사측 주장을 배척했다.

당시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기업의 경영상황은 여러 경제·사회적 사정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다”이라며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법정수당 추가 청구를 못하게 한다면 경영상 위험을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이 회사의 추가 법정수당이 회사의 매출액과 인건비, 이익잉여금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따졌다. 기아차 통상임금 사건 항소심 재판부 역시 이를 따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판결을 기초로 피고 회사(기아차)가 추산한 미지급 법정수당’ 규모에 따르더라도 회사의 당기순이익과 매출액, 동원 가능한 자금의 규모(부채비율·유동비율), 보유 현금과 금융상품의 정도, 기업의 계속성과 수익성에 비추어 볼 때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1심과 2심 법원 판단 비교. (자료=서울고법)


다른 소송서도 노동자 유리할 듯…경영상 어려움 판단 객관적 기준 미흡

법조계에선 통상임금 사건에서 노동자들의 법정수당 청구를 제한하는 사유로 쓰인 신의칙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판례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본다.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을 선고할 때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면서도 추가 법정수당 지급은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어 신의칙에 위배된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회사의 경영상 어려움에 기반을 둔 신의칙 적용 기준을 두고 하급심 재판부별로 개별 사건에 대한 판단을 다르게 해 혼란이 지속돼 왔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신의칙 위반 여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한 것은 신의칙을 제한적으로 적용하라는 사실상 새 기준으로 제시됐다. 대형 법무법인의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원래 신의칙은 적용범위가 좁은 데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에서 지적했든 신의칙은 강행규정을 이길 수 없다”며 “통상임금 지급은 강행규정인데 당시 대법원이 무리하게 신의칙을 여기에 적용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향후 다른 기업들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노동자에게 대체로 유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아차 노조의 법률대리를 맡은 김기덕 변호사는 “당연히 대법원에서 (신의칙 적용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했기에 하급심에서도 엄격하게 판단할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와 금호타이어,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의 경우 임금청구 소송에서 1심과 2심에서 신의칙 적용 판단이 엇갈린 상황이다.

다만 통상임금 사건에서 기업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해선 명확한 객관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다. 대법원은 최근 시영운수 통상임금 사건에서 매출액과 인건비, 이익잉여금 등을 판단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경영상 어려움의 판단기준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재계에서는 이에 더해 현재의 어려움이 아닌 장래의 위기도 경영상 어려움에 포함해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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