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논란' 신경숙 4년 만 활동 재개…"쓰라린 시간이었다"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중편소설 발표
"누추해진 내 책상 지킬 것"
  • 등록 2019-05-23 오후 5:47:58

    수정 2019-05-23 오후 5:49:25

소설가 신경숙.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표절 논란’ 이후 칩거했던 소설가 신경숙(56)이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단편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 4년 만이다.

신 작가는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중편소설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를 발표했다. 친구에게 닥친 비극적 소식에 절망하는 ‘나’와 친구의 교감을 통해 삶·죽음·희망·고통의 의미를 돌아보는 작품이다.

출판사 창비를 통해 작품 발표 소감도 전했다. 신 작가는 “지난 4년은 30년 넘게 이어진 제 글쓰기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본 길고 쓰라린 시간이었다”며 “젊은 날 한순간의 방심으로 제 글쓰기에 중대한 실수가 발생했고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저의 작가로서의 알량한 자부심이 그걸 인정하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신 작가는 “그동안 줄곧 ‘걱정을 끼쳐 미안하고 죄송합니다’라고 혼잣말을 해왔다”며 “한 사람의 작가로서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대상이 되지 못하고 비판의 글을 쓰게 하는 대상으로 혼란과 고통을 드린 것은 모두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이후의 시간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저도 모르지만 저는 읽고 쓰는 인간으로 살며 제 누추해진 책상을 지킬 것”이라며 “제 자리에서 글을 쓰는 일로 다시 부서진 것들을 고치고, 떠내려가는 것들을 건져내고, 닫힌 문은 열고, 사라지는 것들을 애도하고, 메마른 것들에게 물을 주려고 한다. 이것이 앞으로의 저의 소박한 꿈이며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 작가는 “오랜만에 문학계간지의 교정지를 대하니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며 “저는 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차근차근 글을 쓰고 또 써서 저에게 주어진 과분한 기대와 관심, 많은 실망과 염려에 대한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겠다”고 전했다.

다음은 ‘작품을 발표하며’ 전문이다.

오랜만에 새 작품을 발표합니다.

지난 4년은 30년 넘게 이어진 제 글쓰기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본 길고 쓰라린 시간이었습니다.

벼락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던 그 시절 많은 비판과 질책을 받으면서도 제일 마음이 쓰였던 것은 어디선가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든든했던 동료들과, 제 작품을 아끼고 사랑해준 동지 같았던 독자들께 크나큰 염려와 걱정을 끼쳤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가장 아프고 쓰라렸습니다.

젊은 날 한순간의 방심으로 제 글쓰기에 중대한 실수가 발생했고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저의 작가로서의 알량한 자부심이 그걸 인정하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4년 동안 줄곧 혼잣말을 해왔는데 걱정을 끼쳐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였습니다.

저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해온 분들께도 마찬가지 마음입니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대상이 되지 못하고 비판의 글을 쓰게 하는 대상으로 혼란과 고통을 드렸습니다.

모두 저의 잘못이고 불찰입니다.

지난 4년 동안 제가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분들 가운데 여럿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 앞에 망연자실했습니다.

새삼스럽게 작은 호의, 내민 손, 내쳐진 것들의 사회적 의미,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닫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작가들의 새로운 글쓰기에 의해 많은 가치들이 새롭게 무장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도 조용히 지켜봤습니다. 감사하고 설레고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이후의 시간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저도 모르지만 저는 읽고 쓰는 인간으로 살며 제 누추해진 책상을 지킬 것입니다.

제 자리에서 글을 쓰는 일로 다시 부서진 것들을 고치고, 떠내려가는 것들을 건져내고, 닫힌 문은 열고, 사라지는 것들을 애도하고, 메마른 것들에게 물을 주려고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저의 소박한 꿈이며 계획입니다.

오랜만에 문학계간지의 교정지를 대하니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면을 통해 만나게 될 독자들의 눈빛과 음성이 떠오릅니다. 제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니 차근차근 글을 쓰고 또 써서 저에게 주어진 과분한 기대와 관심, 많은 실망과 염려에 대한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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