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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10년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정책 당국자들은 위기 징후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얼마나 클지를 과소평가하는 두 가지 결정적인 잘못을 범했다며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자기 반성의 목소리를 냈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뉴스에 따르면 버냉키 전 의장은 이날 글로벌 금융위기를 돌아보는 90페이지 짜리 논문을 발간한 뒤 이를 소개하는 짧은 동영상을 통해 “어느 누구도 그 위기 자체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파괴적일지를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현재 브루킹스연구소 펠로우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금융위기가 발발한 시기였던 지난 2006년부터 2014년까지 8년간 연준 의장을 역임하며 위기 극복을 위한 부양정책을 펼친 인물이다.
버냉키 전 의장은 당시 경기 침체의 폭을 키운 핵심적 원인 중 하나로 2008년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금융시스템 내에 공포감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별도의 블로그 포스트에서 “당시 경기 하강이 얼마나 극심할지 예측하지 못했다”며 “향후에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경제를 평가하는 모델과 전망에 크레딧시장 변수들을 보다 광범위하게 반영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버냉키 전 의장도 이날 공개한 논문에서 집값 버블 붕괴와 그에 따른 가계의 부(富) 감소, 소비 위축이 금융위기에 따른 극심한 경기 하강의 주범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반박했다. 그는 “집값 폭락은 의심할 여지 없이 금융위기를 촉발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투자자들이 은행과 금융회사로부터 갑자기 자금을 빼내가지 않았다면 경기 침체가 그토록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당시 1930년대 대공황에 비견할 만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사태)이 있었지만 과거처럼 사람들이 길에 줄을 서서 돈을 찾아가는 대신 온라인상에서 자금을 빼갔다”며 그로 인해 가계와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여력이 크게 줄어들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금융위기 이후 은행권의 자본을 확충하고 다른 개혁 조치들을 취하면서 금융시스템이 위기에 대처하는 저항력이 크게 개선됐다고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올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 당국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들이 더 갖춰져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는 다소 덜 낙관적이긴 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