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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 지배력 따라 ‘관계사냐 종속사냐’ 시각차이
한미 사례를 찬찬히 따져보려면 옛 한미약품이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한미홀딩스)로 재출범한 2010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인적분할은 한미약품 1주당 한미홀딩스(존속회사) 주식 0.25주와 한미약품(신설회사) 주식 0.75주를 나눠 갖게 되는 방식이었다. 한미홀딩스는 자회사 관리 및 투자부문을, 한미약품은 의약품 제조·판매 부문을 전담하는 구조다.
분할 이후 처음 작성·공시한 2010년도 사업보고서에서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을 ‘주요 종속회사’로 분류했다. 추가 공시한 연결재무제표상 지배-종속 관계 근거로는 ‘실질 지배’라고 적었다.
하지만 K-IFRS 도입 원년인 2011년 재표제표에서는 한미사이언스가 보유한 한미약품의 지분율(40%)이 50% 이하로 지배력이 없다고 판단된다며 연결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신 직전 사업연도 말 자산총액이 100억원 미만이어서 연결대상에서 제외했던 에르무루스(95.24%), 일본한미약품(100%), 한미유럽(Hanmi Europe Ltd·100%)을 연결대상으로 포함했다. 동시에 연결범위 변동 효과를 반영해 2010년 연결재무제표를 재산정했더니 일회성 지분법 투자 손실 97억3736만원이 발생해 영업흑자에서 영업적자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고의적 분식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짐작게 하는 부분이다.
이런 회계정책 아래 작성된 연결재무제표에 안진회계법인은 2015년까지 ‘적정’ 의견을 줬다. 뒤이어 2016년부터 3년간 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 역시 이런 회계정책을 손보지 않았는데 2019회계연도 기말 감사 중인 한영회계법인이 특별한 재무상 이벤트가 없었음에도 한미약품을 관계회사로 분류한 회계처리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애초 한미 측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이미 대형 회계법인 4개사 중 2개사가 인증한 장부를 고쳐야 한다면 K-IFRS 무용론이 벌어질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쟁점 사안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한미약품 이사회 구성과 주주총회에서 행사된 의결권이다.
올해 3분기 기준 한미약품 등기임원을 보면 이관순 부회장, 우종수·권세창 대표이사 사장, 임종윤 사장, 임종훈 부사장, 이동호·김성훈·김성훈 사외이사 등 총 8인이다. 이중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사장을, 우종수·권세창 대표이사 사장은 각각 경영관리·신약개발 부문장을 맡고 있다.
한영회계법인은 이를 두고 사실상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가 한 몸처럼 경영되고 있다고 했고, 한미 측은 등기임원 8명 중 절반에 못 미치는 3명만이 겸임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실질 의결권에 대해서는 한영회계법인은 역대 주주총회에서 늘 50%가 넘었다고 한 반면 한미 측은 향후 전자투표제가 도입되면 50%를 밑돌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깐깐해진 감사·책임 커진 회계법인…상장사 리스크 커졌다
한미약품그룹의 경우 회계 당국이 한미 쪽 손을 들어주면서 과거 회계장부를 다 뜯어고쳐야 하는 리스크에서는 벗어났지만 비슷한 사례가 줄줄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높다. IFRS가 자율성을 폭넓게 인정한 회계제도인만큼 해석이나 시각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회계개혁으로 감사 기준이 깐깐해진 가운데 삼성바이오로직스 경우 회계사가 구속되는 결과를 지켜본 회계법인으로서는 문제가 될만한 소지를 가급적 짚고 넘어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처럼 당국에 자문을 받으러 달려가는 사례 역시 빈번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한미 사례가 알려지면 연결 대상 범위로 기업·전당기 감사인 간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 너도나도 질의회신을 신청할 전망이다. 한 회계법인 대표는 “모든 판단을 당국에 떠넘기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그렇다면 감사인 존재의 이유가 뭐냐”고 반문했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회계개혁 방향은 맞지만 이로 인한 기업들의 부담도 상당하다”며 “기업 펀더멘털에는 변화가 없는데 회계처리 기준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감사의견 비적정을 받으면 자칫 분식회계 이미지로 비쳐질 수 있는데다 거래정지 등 상장사로서 받는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