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 블랙홀 관측 성공…이론상의 블랙홀 '실제'가 되다

EHT 연구진, 먼 은하 M87의 중심부 블랙홀 관측…일반상대성이론의 궁극적인 증명
전 세계 협력한 8개 전파망원경 연결…한국도 KVN 등으로 참여
  • 등록 2019-04-10 오후 10:07:00

    수정 2019-04-12 오후 6:02:10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인류 역사상 최초로 블랙홀의 사진이 공개됐다. 이론에서만 존재하던 블랙홀의 모습이 인류에게 실제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관측·공개된 초대질량 블랙홀 M87의 모습. 사진=EHT 공식 홈페이지.
이론상에서만 존재하던 블랙홀 실제 모습을 드러내다

사건지평선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이하 EHT) 국제공동연구진은 전 세계 협력에 기반한 8개의 전파망원경으로 구성된 EHT를 통해 초대질량 블랙홀 관측에 성공했다고 10일 밝혔다.

EHT는 전 세계에 산재한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어 블랙홀의 영상을 포착하려는 국제협력 프로젝트이자 이 가상 망원경의 이름이다. 사건지평선이란 블랙홀 안팎을 연결하는 지대를 뜻한다.

해당 관측 결과는 10일 미국 천체물리학저널 레터스(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특별판에 6편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발표된 영상은 처녀자리 은하단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거대은하 M87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을 보여준다. 이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져 있으며 무게는 태양 질량의 65억 배에 달한다.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강한 중력을 갖고 있으며 사건지평선 바깥을 지나가는 빛도 휘어지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블랙홀 뒤편에 있는 밝은 천체나 블랙홀 주변에서 내뿜는 빛은 왜곡돼 블랙홀 주위를 휘감는다. 왜곡된 빛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블랙홀을 비춰 블랙홀의 윤곽이 드러나게 하는데 이 윤곽을 ‘블랙홀의 그림자’라고 한다. 연구진은 여러 번의 관측자료 보정과 영상화 작업을 통해 고리 형태의 구조와 중심부의 어두운 지역, 즉 블랙홀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M87 블랙홀의 경계(사건의 지평선)는 400억km에 조금 못 미친다고 밝혔다. 블랙홀 그림자의 크기는 이 보다 2.5배 정도 크다.

블랙홀은 극단적으로 압축된 천체로 매우 작은 공간 내에 엄청난 질량을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지구 질량의 블랙홀은 탁구공의 절반보다도 작은 지름을 지닌다. 이런 천체들의 존재는 시공간을 휘게 하고 주변 물질들을 초고온으로 가열시키면서 주변 환경에 극단적인 영향을 끼친다.

개기일식으로 일반상대성이론 증명한 100주년 맞아 겹경사…韓도 참여

EHT는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이 개기일식에 의해 처음으로 검증된 역사적인 실험의 100주년이 되는 올해 우주에서 가장 극단적인 천체들을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과학자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관측을 위해 EHT는 전 지구에 걸친 망원경 8개를 연결해 이전에 없던 높은 민감도와 분해능을 가진 지구 규모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었다. 지구의 자전을 이용해 합성하는 기술로 1.3밀리미터 파장 대역에서 하나의 거대한 지구 규모의 망원경이 구동되는 것이다. 이런 가상 망원경을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 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라고 한다. EHT의 공간분해능은 파리의 카페에서 뉴욕에 있는 신문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분해능이다.

8개 망원경은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 아타카마 패스파인더(APEX), 유럽 국제전파천문학연구소(IRAM) 30미터 망원경,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대형 밀리미터 망원경(LMT), 서브밀리미터 집합체(SMA), 서브밀리미터 망원경(SMT), 남극 망원경(SPT)이다.

해당 관측은 지난 2017년 4월 5일부터 14일까지 6개 대륙에서 8개 망원경이 참여해 진행됐다. 같은 시각 서로 다른 망원경을 통해 들어온 블랙홀의 전파신호를 컴퓨터로 통합 분석해 이를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블랙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얻었다. EHT의 원본 데이터를 최종 영상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분석은 독일 막스플랑크 전파천문학연구소(MPIfR)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 헤이스택 관측소에 위치한 특화된 슈퍼컴퓨터를 활용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국제전파천문학연구소(IRAM NOEMA) 천문대, 그린란드 망원경(GLT) 그리고 킷픽(Kitt Peak) 망원경의 참여로 더욱 향상된 민감도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 한국천문연구원 소속 연구자 등 8명이 동아시아관측소(EAO) 산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과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의 협력 구성원으로서 EHT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한국이 운영하고 있는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과 동아시아우주전파관측망(EAVN)이 이 연구에 기여했다.

한국천문연구원 손봉원 박사는 “이번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궁극적인 증명이며 그간 가정했던 블랙홀을 실제 관측해 연구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며 “향후 EHT의 관측에 한국의 기여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EHT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불가능 여겨졌던 일 이뤘다”

EHT의 구축과 이번 관측 결과는 수십 년간의 관측, 기술적 그리고 이론적 연구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번 국제 협력 연구는 전 세계 연구자들의 긴밀한 공동 작업을 요구했으며 13개의 파트너 기관이 EHT를 만들기 위해 기존에 있던 기반 시설을 이용하고 각 정부 기관에서 지원을 받으며 함께 참여했다. 주요 예산은 미국국립과학재단(NSF), 유럽연구회(ERC) 그리고 동아시아의 연구재단들로부터 지원 받았다.

이번 발표에 대해 EHT 연구자들은 천문학 역사상 획기적인 발견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EHT 프로젝트 총괄 단장인 하버드 스미스소니안 천체물리센터의 쉐퍼드 도엘레만(Sheperd S. Doeleman) 박사는 “우리는 인류에게 최초로 블랙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 결과는 천문학 역사상 매우 중요한 발견이며 2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의 협력으로 이뤄진 이례적인 과학 성과”라고 언급했다.

EHT 과학이사회 위원장인 네덜란드 래드버드(Radboud) 대학의 하이노 팔크(Heino Falcke) 교수는 “만약 블랙홀이 밝게 빛나는 가스로 이뤄진 원반 형태의 지역에 담겨 있다면 블랙홀이 그림자와 같은 어두운 지역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현상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측되지만 우리가 이전에는 전혀 직접적으로 보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건지평선에서 빛이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으로 휘어져서 생긴 이 그림자는 이 매혹적인 천체에 대해 굉장히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M87 블랙홀의 어마어마한 질량을 측정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EHT이사회 구성원이자 동아시아관측소(EAO) 소장인 폴호(Paul T. P. Ho)는 “우리는 이번 관측 결과들을 시공간의 휘어짐, 초고온으로 가열된 물질과 강한 자기장을 포함하는 물리학적 컴퓨터 모델들과 비교할 수 있었다. 실제로 관측된 영상의 다양한 특징들이 우리의 이론적인 예측과 놀라울 정도로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로써 블랙홀 질량 측정을 포함한 우리 관측 결과를 확신할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도엘레만(Doeleman) 박사는 “우리는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일을 이뤄냈다”며 “지난 수십 년간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 성능의 전파망원경들을 서로 연결해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에 새로운 장을 함께 열었다”고 총평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꼼짝 마
  • 우승의 짜릿함
  • 돌발 상황
  • 2억 괴물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