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증가율을 ‘조금 더’ 낮추어 나갈 필요가 있다.” (올해 10월 18일 가계부채 관리 점검 회의)
금융 당국의 국내 가계부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1년 사이 확 달라졌다. 가계 빚 증가를 억누르겠다는 의지가 예전보다 강해진 것이다. 그러나 금리 인상, 경기 둔화 등으로 가계의 부담이 커지는 터라 급격한 빚 억제 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금융위 부위원장 “가계부채 증가율 더 낮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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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이날 회의 직후 브리핑을 갖고 “가계부채 증가율을 매년 조금씩 줄여서 2021년에는 명목 GDP 성장률 정도까지 낮추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계 빚 증가 속도를 3년 안에 나라 전체의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 수준으로 완만하게 늦추겠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의 이런 입장은 불과 1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금융위는 앞서 작년 10월 ‘가계부채 종합 대책’을 발표할 때만 해도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 빚 증가율이 점진적으로 둔화하도록 유도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향후 5년간 가계부채 증가율을 가계 빚이 급격히 불어난 2015~2016년을 제외하고 지난 10년간(2005~2014년)의 연평균 증가율인 8.2% 이내로 유도하겠다고 했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가계신용(자영업자의 사업자 대출을 제외한 가계 빚)은 올해 2분기(4~6월)에 작년 같은 기간보다 7.6% 늘며 2016년(11.6%)이나 지난해(8.1%) 대비 증가세가 다소 주춤해졌다. 문제는 금융위가 목표 지표로 삼은 명목 GDP 성장률은 이보다 훨씬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2018~2019년 경제 전망’을 발표하며 올해 경상 GDP 증가율(명목 GDP 성장률)을 4%로 잡았다.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아 올해 성장률이 작년(5.4%)보다 많이 내려가리라는 것이다. 기재부는 내년 경상 GDP 증가율을 4.4%로 예상했는데, 이 역시 최근 경기 흐름을 보면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에 우세하다.
내달 ‘DSR 규제’ 은행 전격 도입…가계부채 경착륙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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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다음달부터 KB국민은행·우리은행 등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특수은행은 가계 대출 신규 취급액에서 DSR이 70%를 넘는 위험 대출액 비율을 지금보다 5~10%포인트 정도 줄여야 한다. 전체 은행권 대출자 4명 중 1명꼴로 대출 신청을 거절당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처럼 가계부채 문제에 강성으로 돌아선 금융 당국의 변모를 걱정스럽게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급격한 빚 죄기가 소비 둔화나 저소득층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서다.
실제 한국은 그간 다른 주요국과 다르게 가계 빚에 의존한 성장을 한 것이 특징이다. 가계부채 의존도가 높다는 얘기다.
국제결제은행(BIS) 통계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현재 95.2%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3분기(73.9%)보다 21.3%포인트나 늘어났다. BIS의 전체 조사 대상 43개국 중 넷째로 가계 빚이 많이 증가한 것이다. 반면 이 기간 43개국의 평균 가계부채 비율은 0.7%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지난 10년 사이 정부가 부채를 늘리며 경기 부양과 성장을 사실상 주도했다. 금융위기 발생 후 현재까지 43개국의 평균 정부 부채 비율은 27.4%포인트 늘었다. 그러나 한국은 가계부채가 주로 늘고 정부의 부채 비율은 16.8%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금융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규제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도 최근 중국의 경제 위기 가능성 등 외부 여건 변화에 따라 국내 가계부채의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금융위에 컨틴전시 플랜(비상 대책) 점검까지 주문한 상황”이라고 당국의 입장이 변화한 배경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