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렬
  • 영역
  • 기간
  • 기자명
  • 단어포함
  • 단어제외

뉴스 검색결과 48건

이윤규 경기대 총장 "선택과 집중 통해 명품대학 만들 것"
  • 이윤규 경기대 총장 "선택과 집중 통해 명품대학 만들 것"
  • 이윤규 경기대 총장(사진=김태형 기자)[이데일리 신하영·김형환 기자]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학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이윤규 경기대 총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대학 발전을 강조했다. 인문·예술 등 기존 경기대의 강점을 토대로 반도체·바이오·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탄소중립 등을 융합시켜 대학을 ‘경기도를 대표하는 명품대학’으로 이끌겠다는 포부다. 이 총장은 경기대 75년 역사상 첫 모교 출신 총장이다. 경기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경기대 회계세무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재무처장·기획처장·교학부총장 등을 역임하고 작년 7월 경기대 11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지난 3일에는 취임 6개월 만에 (주)플랜엠으로부터 100억원 규모의 발전기금을 유치했다. 플랜엠은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에서 1550개 학급에 이동형 교실 등을 시공한 친환경 학교 모듈러 건설 기업으로 경기대 동문인 이민규 대표(러시아학과 95학번)가 2020년 창업했다. 이 총장은 “경기대 첫 모교 출신 총장으로 동문들이 도와준 결과”라며 “100억원 유치에 그치지 않고 발전기금 추가 모금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이 총장은 임기 동안 모교를 ‘경기도를 대표하는 명품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기존 경기대의 강점으로 꼽히는 인문학·문화예술의 토대 위에 4차 산업 혁명의 핵심 분야를 접목하겠다는 발전전략이다. 그는 “경기대가 기존의 명문대학들보다 우위에 설 방법은 선택과 집중”이라며 “대학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겠다”고 했다. 이 총장이 ‘선택과 집중’을 위해 꼽은 분야는 반도체·바이오·탄소중립·ESG경영 등이다. 이를 경기대를 대표하는 학문 분야로 발전시켜 다른 분야까지 파급효과가 미치게 하겠다는 것. 이 총장은 “대표 학문 분야의 가치가 높아지면 나머지 학과들도 동반 성장할 수 있다”며 “반도체 분야는 이미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 중심 대학 사업에 선정되는 등 본 궤도에 올랐으며 총장 취임 후 탄소중립·ESG경영을 특성화분야로 추가했다”고 했다. 기후변화와 환경문제가 부각되면서 탄소중립과 ESG경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경기대는 올 상반기 중 서울·수원캠퍼스에 탄소중립·ESG경영 관련 최고위과정을 개설한 뒤 2025학년도를 목표로 학부에도 ESG경영학과(가칭)를 신설할 예정이다. 이 총장은 “임기 중 경기대를 탄소중립 특성화 대학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며 “교육과정 개발 등 준비작업을 거쳐 학부에도 관련 학과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1947년 서울 종로구에서 조양보육사범학교로 개교한 경기대는 1982년 대학본부를 경기도 수원시로 옮기면서 2개의 캠퍼스를 보유하게 됐다. 근거지를 수원으로 옮긴 셈이지만 서울 서대문구 소재 서울캠퍼스도 관광·문화 메카로 육성할 계획이다. 이 총장은 “관광문화대학·한류문화대학원을 발전시키면 경기대 서울캠퍼스를 관광문화와 한류의 중심지로 만들 수 있다”며 “향후 임기를 마친 뒤에는 경기대를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시킨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2023.01.19 I 신하영 기자
남편 떠난 지 32년, 아내는 비로소 세상에 작품을 맡겼다
  • 남편 떠난 지 32년, 아내는 비로소 세상에 작품을 맡겼다
  • 1968년 작가 이승조(왼쪽)와 2022년 작가의 아내 고정자. ‘제12회 현대작가초대전’에 낸 출품작 ‘핵 10’(1968·129.5×130㎝) 옆에서 이 작가는 모처럼 미소를 머금고 있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이승조 전’에 나온 ‘핵 86-27’(1986·227×182㎝) 옆에는 작가의 아내가 섰다. 안성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이번에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 여기 한 작가가 있다. 아무도 보지 못했고, 시도조차 못한 그림을 그렸다. 원통 모양의 파이프를 주축으로 철저하고 엄격하게 만들어낸 추상세계였다. 떡잎부터 화려했다. 추상이란 말 대신 ‘전위예술’ ‘아방가르드’라 했던 1960년대, 20대 나이로 이미 선봉에 섰으니까. 홍익대 서양화과 60학번 동기들과 1962년 ‘오리진’이란 단체를 만든 게 시작이다. 차가운 금속성 색감을 입은 선과 면이, 계산으로 꾸려낸 기하학적 세상을 내보이는 듯했다. ‘핵’(nucleus)이란 연작명은 참으로 적절했더랬다. 문명의 건조한 미래, 기계의 미학적 연출을 보는 듯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그이의 파이프가 멈췄다. 뻗어나가는 파이프의 끝을 보겠다며 5∼7m 규모의 대작쯤은 우습게 꺼내놓던 그때였다. ‘이제 시작’이라고 했던 그 절정기에 그이는 세상을 떠났다. 마흔아홉에 생과 붓을 접은 이승조(1941∼1990)다. 이승조의 ‘핵 87-99’(1987·200×400㎝). 원통 파이프 이미지를 가로로 변주해 마치 입체작품인 듯한 착시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의 정점을 찍은 대작 중 하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2. 여기 한 작가의 아내가 있다. 그림밖에 모르던 남편에 대한 내조가 그이의 과업이었다. 명색이 화가의 아내인데, 붓 빠는 일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작업에 관한 한 남편은 모든 걸 기꺼이 혼자 다 했으니까. 그렇다면 어떤 내조를? 남편이 별걱정 없이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게 살림을 꾸리는 일이었다. 수입으로 10이 생기면 7로 화구를 산 뒤 3으로 살았다고 했다. ‘최고의 작품은 최고의 재료에서 나온다’고 믿는 남편이었고 그런 남편을 아내는 인정했다. 돌아보니 마지막 소원이었던, 남편의 한도 해결했다. 살던 집을 팔고 곗돈을 모아 경기 안성에 스튜디오를 장만해준 거다. 작은 캔버스에서 벗어나 파이프가 끝없이 확장해가는 거대한 세계를 내보이고 싶어한 남편은, 그렇게 꿈을 이뤘다. 하지만 그토록 어렵게 마련한 작업실에서 고작 7년뿐이었다. 결국 마흔둘의 나이에 남편의 ‘빛’과 ‘빚’을 다 끌어안은 이승조의 아내 고정자(74) 여사다. 작가 이승조의 아내 고정자 여사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이승조 전’에 건 ‘핵 90-10, 90-11’(1986∼1990·229.5×699㎝) 옆에 섰다. 안성 스튜디오에서 마지막으로 작업한 미완성 대작으로 이번 전시작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 뒤로 ‘핵’(1984·193.5×224)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남긴 작품 100여점뿐…한점 한점 행방 신중해질 수밖에”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 ‘이승조 전’을 열고 있는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작가 대신 작가의 아내가 서 있다. 이승조의 예술혼이 꿈틀대는 전시장에서 고 여사를 만난 건 두 번째. 2년 전인 2020년 8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연 대형회고전 ‘이승조: 도열하는 기둥’이 처음이었더랬다. 당시 “회고전이 아닌 재조명전”이라고 거침없이 말한 건 그이뿐이었다. “시대에 따라 예술혼은 수정해야 하고, 그게 가치있는 일”이라고도 했다. 관람객처럼 작품 곁을 맴돌았지만, 막상 입을 떼자 단호하고 선명한 비평가가 돼 있었다. 지난 30여년이, 지고지순한 전업주부였던 그이를 절반은 ‘이승조 전문가’, 절반은 ‘미술전문가’로 바꿔버린 거다. 아니 그냥 ‘이승조’가 됐다. 그렇다고 지난 세월의 무게가 가벼웠다고 할 수 있겠나. 그 암담한 먹먹함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가시질 않았다. 그땐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이를 만나야 할 이유가 분명했던 거다. 남편의 살인 듯 피인 듯 지켜온 ‘이승조 컬렉션’을 상업화랑에 내건 까닭이 무엇보다 궁금했다. 상업화랑에 작품을 내놨다는 건 작품을 팔겠다는 의지니까. “최고의 퀄리티로 작품을 지켜내는 것이 유족으로 남은 할 일”이라고 말했던 그이가 아닌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국제갤러리 ‘이승조 전’ 전경. ‘핵 F-77’(1971·145×145㎝·왼쪽)와 ‘핵 89-20’(1989·145×89.5㎝)이 나란히 걸렸다. 단순한 색감을 입은 세련된 미감의 파이프. 얼추 20년을 사이에 둔 두 작품에선 세월의 거리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국제갤러리가 이승조와 이승조의 작품을 세상에 알릴, 큰 계획을 제시하더라. 해외로, 미술관으로, 다시 화랑으로 순회하는. 그렇게만 된다면 지난 재조명전 이후 진전된 성과를 낼 수 있겠다 싶었다. 이미 준비된 이승조를 한국을 너머 세계시장에까지 체계적으로 알려갈 수 있을 테니까.” 그동안 고 여사에겐 불안감이 있었나 보다. 작품이 팔려 여기저기 흩어지면 남편의 흔적도 따라 흩어질 것 같은. 그래서 작품 소장은 대중이 함께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엄중하게 제한해왔던 거다. 왜 그렇게까지? 이 대답 한마디로 그 사정을 이해했다. “남편이 남긴 작품 수가 100여점밖에 안 된다. 물론 여느 작가의 300점 가치를 가지기는 했지만.” 국제갤러리 ‘이승조 전’ 전경. ‘핵 78-21’(1978·128.5×500.5㎝·왼쪽)과 ‘핵 88-19’(1988·195×132.5㎝) 등 이 작가의 대작이 줄줄이 걸린 전시장에는 관람객들이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그도 그럴 것이 이승조의 작품은 ‘대단히 크다.’ 타계하기 전 7년간, 그러니까 안성 스튜디오에서의 가히 정점으로 끌어올린 말기작은 1000호를 넘나들 만큼 어마어마하다. 그런 대작이 행여 제대로 걸리지도 못하고 여기저기서 홀대받는 ‘꼴’은 죽어도 보기가 싫었던 거다. 그러니 어쩌겠나. 작품 한점 한점이 나갈 행방에 신중해질 수밖에. 국내 갤러리에서 연 전시는 1996년 현대화랑에서 연 개인전이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혀갈 그때, 전시를 찾은 이우환(86) 화백의 한마디가 가슴에 꽂혔더란다. “‘지금은 이승조의 때가 아니다. 한국사회가 좀더 메커니컬해져야 이승조를 이해할 수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하시더라.” 그래, 차라리 때를 기다리며 늦게나마 알려나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확신을 얻었다고 할까. “그게 쉽지, 이미 흩어진 작품을 나중에 다시 모으는 건 정말 어렵지 않겠나.” 작가 이승조의 아내 고정자 여사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이승조 전’을 둘러보다가 나란히 걸린 ‘핵 74-07’(1974·145×145㎝·왼쪽)과 ‘핵 75-10’(1975·146×146㎝)을 오래 바라봤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상 안타는 게 더 어렵다” 어록 만든 작품들 나와26년 만의 ‘갤러리 전시’에는 30여점이 걸렸다. 하나하나, 의미가 없는 작품이 없다. 안성 스튜디오에서 나온 마지막 미완성 대작 ‘핵 90-10, 90-11’(1986∼1990·229.5×699㎝)이 걸렸고, 몇장 남지 않은 작가의 옛 사진에서 함께 찍힌 ‘핵 10’(1968·129.5×130㎝)도 나왔다. 1968년 ‘제12회 현대작가초대전’에 낸 출품작 옆에서 작가는 모처럼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승조의 ‘핵 10’(1968·129.5×130㎝). 이 작가가 1968년 ‘제12회 현대작가초대전’에 출품작으로 내고 그 옆에 서서 빛바랜 사진 한 점으로 기록했던, 바로 그 사진 속 작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승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 속 작품들도 따라나왔다. “상을 타기도 어렵지만 안 타는 게 더 어렵다”는 그 유명한 어록을 탄생시킨 일화 말이다. 바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1968년부터 1971년까지 연달아 4회 수상하는 파란을 일으켰던 건데. 그것도 이전엔 단 한 차례도 없던 추상회화로 말이다. 보수적인 국전도 어쩔 수 없이 수상작으로 낼 만큼 탁월했다는 얘기다. 국전 제18회(1969)와 제19회(1970)에서 각각 수상한 ‘핵 G-99’(1968·162.2×130㎝), ‘핵 PM-76’(1969·161.4×161.5㎝)이 마주 보고 걸렸다. 이승조의 ‘핵 PM-76’(1969·161.4×161.5㎝). 1970년 제1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가는 1968∼1971년 국전에서 연달아 4회 수상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상을 타기도 어렵지만 안 타는 게 더 어렵다”는 어록을 탄생시켰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승조의 ‘핵 PM-76’(1969·161.4×161.5㎝) 부분. 테이프로 캔버스에 경계를 정한 뒤 납작한 평붓으로 그러데이션을 주며 만들어낸 선·면이 보인다. 초기작이지만 이후 절정의 작품들 못지않게 대단히 정교하고 균일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승조의 ‘핵 G-99’(1968·162.2×130㎝) 앞에 선 한 관람객이 오래 머물렀다. 1969년 제1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가는 1968∼1971년 국전에서 연달아 4회 수상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상을 타기도 어렵지만 안 타는 게 더 어렵다”는 어록을 탄생시켰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 작가가 청혼할 때 고 여사가 들은 말이 “평범하게 살 생각은 하지 말라”였다나. 그런데 이토록 비범한 삶을 살게 할 줄은 자신도 몰랐을 거다.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은 돈을 빌리며 살았는데, 그후엔 다신 빌리지 않았다”는 뒷얘기는 2년이 지나서야 들었다. ‘아름다운 죽음’이었다고 되레 다른 이들을 위로했던 그이가 남편이 떠난 그날 이후 5년여간 집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는 얘기도 이제야 꺼내놨다. 지난 일은 바래거나 포장되게 마련인데도, 그이의 잣대는 작가의 엄격한 추상 그 이상이다. 건조했을 작가의 생애가 뒤늦게 촉촉해졌다면, 남들이 ‘차가운 추상’이라고 말해온 작품에서 따뜻한 온기가 보인다면, 그건 온전히 작가의 아내가 평생을 짜낸 ‘죽을 힘’ 덕분이어야 한다. 전시는 30일까지. 국제갤러리 ‘이승조 전’ 전경. 한 관람객이 이승조의 ‘핵 90-10, 90-11’(1986∼1990·229.5×699㎝)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안성 스튜디오에서 마지막으로 작업한 미완성 대작으로 이번 전시작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2022.10.20 I 오현주 기자
 붉은 돌기산에 내린 이름 '인왕'…차대영 '인왕산'
  • [e갤러리] 붉은 돌기산에 내린 이름 '인왕'…차대영 '인왕산'
  • 차대영 ‘인왕산’(MT. Inwang)(사진=아트스페이스선)[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붉은 산. 말로만 들어왔다. 그 산이 눈앞에서 꿈틀거릴 거라곤 상상을 못했다. 불이라도 놓은 듯 새빨갛게 타들어가는 산에서 그나마 분간할 수 있는 건 휘어진 산세와 불거진 나무의 흔적뿐이다. 그저 오톨도톨하게 솟은 점과 점으로 말이다. 작가 차대영(64·수원대 미대 교수)은 이 ‘돌기산’에 ‘인왕산’(MT. Inwang·2021)이란 이름을 내렸다. 사실 인왕산은 작가 작업의 오랜 바탕이자 모티프였다. 조선 600년을 지켜본 인왕산이야말로 우리의 어제이자 오늘이고 내일이란 확신에서다. 관건은 ‘어떻게?’였을 거다. 시작은 겸재 정선에 대한 오마주였단다. 인왕산을 그린 조선의 큰 작가. 그렇다고 답습은 아니었다. 당장 한국화는 먹으로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부터 깼으니까. 특유의 백색미감을 토대로 ‘포인트컬러’에 얹은 절대색감까지 드러냈더랬다. 하지만 성이 차진 않았나 보다. 결국 포인트컬러가 화면 전체를 적셔냈으니. 일찌감치 화려한 채색화로 1991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한국화부문 대상을 받아내며 자신의 길은 물론 한국화의 길까지 바꿔버렸던 경력이 새삼스럽다. 24일까지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서 여는 ‘홍대 75전’에서 볼 수 있다. 홍익대 미대 75학번의 동기전이다. 작가 27명이 회화·조각·설치작품 등 29점을 걸고 횟수로는 5번째, 햇수로는 4년 만에 다시 열었다. 캔버스에 오일. 61×73㎝. 아트스페이스선 제공.
2022.07.16 I 오현주 기자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김준권 '춤추는 산-1'
  • [e갤러리]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김준권 '춤추는 산-1'
  • 김준권 ‘춤추는 산-1’(사진=아트스페이스선)[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굳이 한계령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우리 산이란 더도 덜도 아닌 딱 이 정도, 이 크기, 이 거리니까. 작가 김준권(66)이 제대로 꿰뚫어낸 거다. 작가는 민족의 산하를 최소한의 먹과 색으로 풀어낸다. 방식이자 도구는 목판. 여러 장의 목판을 겹쳐 판화로 찍으면서도 마치 한 붓으로 그린 듯한 거대한 산세를 눈앞에 들이대는데. 진하고 흐린 여운만으로 진지하다 못해 엄숙한 풍광을 펼쳐내는 거다. 1980년대 민중미술부터 현대적 산수까지 진화를 거듭해오는 동안, 2018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던 판문점 평화의집에 건 ‘산운’이 화제가 됐더랬다. 백두대간을 목판에 새기고 찍어낸 그 ‘산운’을 배경으로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명록을 썼다. ‘산운’이 먹의 농담으로 멀리 내친 원경이라면 ‘춤추는 산-1’(2021)은 색의 농담으로 좀더 가까이 당긴 근경쯤 될 터.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고 할 참이다. 24일까지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서 여는 ‘홍대 75전’에서 볼 수 있다. 홍익대 미대 75학번의 동기전이다. 작가 27명이 회화·조각·설치작품 등 29점을 걸고 횟수로는 5번째, 햇수로는 4년 만에 다시 열었다. 채묵목판. 60×60㎝. 아트스페이스선 제공.
2022.07.15 I 오현주 기자
 치밀한 그리움…황찬수 '네가 그립다'
  • [e갤러리] 치밀한 그리움…황찬수 '네가 그립다'
  • 황찬수 ‘네가 그립다’(Missing You-2104)(사진=아트스페이스선)·[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원래 그런 거다. 뭔가를 그리워한다는 게 말이다. 바닥이 파일 만큼 그어내고, 한 가지 톤으로 몰아가고, 때론 짧게 때론 길게 겹치고 또 겹쳐내는, 그 외에 별다른 게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 선과 색, 결을 한 화면에 응축하니 바로 ‘네가 그립다’(Missing You-2104·2021)가 됐을 터다. 작가 황찬수(66)는 추상을 입은 붓으로 세상을 그린다. 굳이 특화하자면 색면추상인데, 가로 혹은 세로로 토막 낸 색덩이가 가닿지 못하는 곳이 없는 거다. 일상이든 자연이든, 기억이든 감정이든. 오죽하면 작가 스스로 “도처에서 다가오는 자극·영감·감동, 새로운 경험까지 자유롭게 다룬다”고 했겠나. 그렇다고 방식까지 자유로운 건 아니다. 아니 치밀하다는 게 맞다. 우연하게 나간 듯하지만 정교하게 계산한 붓길이고, 어쩌다 포개졌나 싶지만 의도를 품고 조합한 색감이니까. 다만 “억지로 쥐어짜내려 하지 않고 내 몸 안에서 걸러져 드러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선·색·결만 남기는 필터링, 그 지난한 시간을 참아낸다는 얘기다. 24일까지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서 여는 ‘홍대 75전’에서 볼 수 있다. 홍익대 미대 75학번의 동기전이다. 작가 27명이 회화·조각·설치작품 등 29점을 걸고 횟수로는 5번째, 햇수로는 4년 만에 다시 열었다. 캔버스에 아크릴. 80.3×116.7㎝. 아트스페이스선 제공.
2022.07.08 I 오현주 기자
 현실은 그림처럼 다정하지 않거늘…이신명 '천변풍경'
  • [e갤러리] 현실은 그림처럼 다정하지 않거늘…이신명 '천변풍경'
  • 이신명 ‘천변풍경’(사진=아트스페이스선)[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돌과 시멘트로 높게 쌓아올린 담벼락, 그 위로 집과 집을 바투 지어 옹기종기 모여 살았더랬다. 담벼락 아래로 흐르는 개천도 빼놓을 수 없는 전경이다. 하지만 말이 좋아 개천이지 낭만적인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잡초더미 무성하게 키운 탁한 물이 흐르기 일쑤였으니. 현실은 그림만큼 아름답지도 다정하지도 않았던 거다. 자연이 살자고 만든 게 아닌 사람이 살자고 만든 풍경. 그래도 작가 이신명은 그 흔적이 그립다고 했다. “개발이란 명목이 떠밀어낸 옛 풍경을 오래도록 마음에 붙들어두고자” 했단다. 슬레이트지붕과 돌담, 삐죽 솟은 굴뚝과 전신주, 창살 세운 창과 비뚤고 거친 계단 등, 좁은 골목길이 길게 품어낸 이들 풍광은 작가가 자주 불러내는 소재이자 테마. 아련하게 번진 색과 무너져가는 형체를 위해 작가는 콩테(연필 모양의 크레용)란 도구를 자주 꺼내 들었더랬다. ‘천변풍경’(2019)은 그 긴 시간 중 일부를 정지시켜 놨을 뿐이다. 오래된 사진첩에서 한 장 뽑아낸 듯, 추억조차 닳아버린 한 시절의 서정이 연하게 번진다. 24일까지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서 여는 ‘홍대 75전’에서 볼 수 있다. 홍익대 미대 75학번의 동기전이다. 작가 27명이 회화·조각·설치작품 등 29점을 걸고 횟수로는 5번째, 햇수로는 4년 만에 다시 열었다. 종이에 혼합재료. 91.0×61.0㎝. 아트스페이스선 제공.
2022.07.06 I 오현주 기자
 내가 탈 수 없는 비행기…손기환 '야간비행'
  • [e갤러리] 내가 탈 수 없는 비행기…손기환 '야간비행'
  • 손기환 ‘야간비행’(사진=아트스페이스선)[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떠나는 중인가, 돌아오는 중인가. 달도 없는 어둑한 밤하늘에 검은 비행기가 날고 있다. 그런데 지상의 마을과 하늘의 비행기 사이에 놓인 간극이 간단치 않나 보다. 그 사이가 얼마만큼인지를, 색 중에서도 유독 그 속을 알 수 없는 짙은 보라색 기운으로 가늠해보란다. 작가 손기환(66)이 붓이란 장치로 벌려둔 거리가 말이다. 한눈에 혹할 색감이 시선을 끈다. 하지만 ‘야간비행’(2022)이란 타이틀은 요즘 젊은 세대가 별 의미 없이 연상할 수 있는, 지극히 낭만적인 ‘밤비행’과는 진짜 거리가 있다. 작가는 근·현대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을 그림으로 기록한다니까. 멀리는 일제강점기부터 전쟁·분단을 거친 뒤 산업화시대가 빚은 질곡을 품어낸 풍경을 잡아내는데, 상황이 벌어진 과거 시점에 작가가 살고 있는 현재 시점을 얹어 ‘재해석한 현실’로 꺼내놓는 거다. 덕분에 시내든 작업실이든 흔한 주변풍경에 대한 묘사조차 번번이 심지를 박고 우뚝 서있다. 말 대신 붓으로 색으로 전하는 메시지라고 할까. 24일까지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서 여는 ‘홍대 75전’에서 볼 수 있다. 홍익대 미대 75학번의 동기전이다. 작가 27명이 회화·조각·설치작품 등 29점을 걸고 횟수로는 5번째, 햇수로는 4년 만에 다시 열었다. 캔버스에 아크릴. 91.0×116.7㎝. 아트스페이스선 제공.
2022.07.06 I 오현주 기자
와우산 자락서 만난 그날 이후 47년…'미술천재'들의 특별한 나들이
  • 와우산 자락서 만난 그날 이후 47년…'미술천재'들의 특별한 나들이
  • ‘홍대 75전’에 참여한 작가들이 전시를 개막한 21일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에 4년 만에 다시 모였다. 작품 대신 글로 동기들을 격려한 윤진섭(맨 왼쪽부터 시계방향) 평론가를 시작으로 강기욱·김경희·김정수·황찬수·박헌열·정대현·손기환·한진섭·이상권·김동백·최기봉·김정순·황혜련·왕인희·이신명·이경혜·박은서·성순희 작가들이 정겹게 어깨를 맞대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어느덧 반백 년을 바라본다. ‘붓을 뽑았으면 점이라도 찍겠다’며 덤벼들었던 세월. 그 지난한 시간만큼 이루고 해냈다. 한국미술계의 허리, 바로 중추로서의 역할 말이다. 정확히 47년 전이다. 1975년 홍익대 미술학부로 패기란 깃발 하나씩 들고 모인 학생들. 그해 입학한 새내기 ‘75학번’이었다. 다들 스무살 남짓, 하지만 어리고 여리다고 대충 볼 면면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섰던 사연, 과정이야 제각각이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미술천재’란 소리 한 번씩은 들었을 이들이 아닌가. 동양화·서양화·조각 등 순수미술 수업을 같이 들으며 이후 4년을 함께했던 이들 예비작가들은 유독 돈독했단다. 그래도 어쩌겠나. 졸업을 기점으로 섭섭하고 애틋한 마음만 잔뜩 품은 채 뿔뿔이 흩어져 갈 수밖에. 하지만 그리 아쉬울 것도 없었다. 이들이 휘어잡은 동네가 말이다. 어차피 미술계였으니. 그렇게 ‘따로 또 같이’ 보폭을 넓히던 어느 날 이런 말이 들려왔단다. “우리 한번 뭉쳐보자!” 누가 말을 꺼냈는지는 희미하나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는 선명하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75동기전’, 화끈하게 줄여 ‘홍대 75전’이 결성됐으니까. 그렇게 1985년 ‘홍대 75전’ 첫 전시가 열렸다. 75∼80명 동기 중 30여명이 깃발 대신 이번엔 작품 하나씩 안고 모여들었다. 21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아트스페이스선에는 여느 전시장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졌다. 20여명의 중·장년작가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거다. 맞다. 풍문으로만 들어왔던 그 ‘홍대 75전’이 다시 열린 거다. 회화·조각·설치작품 등 29점을 걸고 세운 전시장에는 예전 그 이름, 그 얼굴, 그 작품이 모였다. 횟수로는 5번째고, 햇수로는 4년 만이다. 첫 전시 이후 1995년 제2회를, 1996년 제3회를, 2018년 제4회 ‘홍대 75전’을 열었더랬다.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에 연 ‘홍대 75전’ 전경. 관람객들이 전시작을 둘러보고 있다. ‘홍대 75전’은 홍익대 미대 75학번들이 결성한 동기전으로 이번이 5회째다. 왼쪽부터 황혜련·이정규·차대영·김준권 작가의 회화작품과 박헌열 작가의 조각작품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번 ‘홍대 75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27명. 강기욱·공미숙·김경희·김동백·김승연·김정수·김정순·김준권·박은서·백낙선·성순희·손기환·심인혜·왕인희·이경혜·이신명·이정규·이희중·정해숙·차대영·황찬수·황혜련 등 22명이 회화작품을, 박헌열·이상권·정대현·최기봉·한진섭 등 5명이 조각·설치작품을 내놨다. ‘진달래 그림’으로 대중에게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김정수 작가가 100호와 60호 규모 ‘진달래 축복’(2022) 2점을, ‘홍대 75전’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정순 작가는 ‘꽃대궐 다시 꽃시절’(2021)을 걸었다. 한국조각가협회 명예이사장인 한진섭 작가는 ‘한마음’(2020)과 ‘행복하여라’(2021) 2점을 세웠다. 지난해 타계한 이정규·이희중 작가의 ‘계곡의 속삭임’(2011)과 ‘진달래꽃’(2001)은 절절한 초대작이다. 이들 외에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작품 대신 ‘스스로에 만족하는 삶을 위하여’란 글로 동기들을 격려했다.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에 연 ‘홍대 75전’ 전경. 전시장 초입에 김정수 작가의 100호 규모 ‘진달래 축복’(2022)과 작품 대신 글을 전시한 윤진섭 평론가의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위하여’가 보인다(사진=이영훈 기자).첫 ‘홍대 75전’ 때 서른 남짓이던 이들은 이제 일흔을 바라본단다. 바래고 흐려진 옛 기억을 더듬어준 건 한 작가다. “참 특별한 학번이었다”고 운을 뗐다. “고집 세고 개성이 남달랐지만 ‘함께’란 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유사한, 홍대 미대 출신 다른 모임이 있지 않을까. 한 작가는 고개부터 내젓는다. “원체 작가란 사람들은 한데 뭉쳐 뭔가를 도모하기가 어려운데, 그 어려운 일을 희한하게도 75학번만 마다하지 않았다”며 웃는다. “1955, 1956년생들이니 하나둘씩 퇴직하고 은퇴한 시점이 아닌가. 이번 전시는 그 의미까지 각별하다.” 그 동기들 중 어느 누구 사연 없는 이가 있겠는가. 그저 묵묵히 붓과 망치로 시간을 다져왔을 터다. 그 긴 서사는 전시작들이 대신 말해준다. 산과 물, 길과 담, 나무와 꽃 등으로 관조하듯 더듬어낸 세월의 두께가 두툼하다. 전시는 7월 24일까지 이어간다. 서울 중구 통일로 아트스페이스선에 연 ‘홍대 75전’ 전경. ‘홍대 75전’은 홍익대 미대 75학번들이 결성한 동기전으로 이번이 5회째다. 왼쪽부터 강기욱·성순희·이희중·심인혜·정해숙 작가의 회화작품과 이상권 작가의 조각작품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2022.06.22 I 오현주 기자
  • [미리보는 이데일리 신문]누리호, 좁고 험한 우주 길 열었다
  •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다음은 6월 22일자 이데일리 신문 주요 뉴스다.△1면-누리호, 좁고 험한 우주 길 열었다- 실거주요건 완화해 임대물량 확대 월세 세액공제율 최대 15%로 늘려- 한은, 올해 물가 2000년대 들어 최고 수준 전망- “국힘 과거로 회귀한다면 당대표 재도전”-[사설]경제 위기에도 팔짱 낀 국회, 이래서 ‘삼류’ 소리 듣는다-[사설]임박한 한미 금리역전, 대비하되 과민반응 자제해야△종합-떴다 하면 한국新…그래도 아직 목마른 ‘수영 괴물’- 남양유업 “백미당 분사 합의 후 말바꿔” VS 한앤코 “그러면 왜 계약서에 도장 찍었나”△애물단지로 변한 우리사주- “공모가 밑도는 주식에 직원도 외면”…우리사주 배정 않는 기업 급증- 크래프톤·롯데렌탈…‘반대매매 쏟아질라’ 끙끙- “공모가 싸야 청약할 것”…하반기 대어급도 예의주시△누리호 발사 성공- 우리가 만든 발사체로 우리가 만든 위성 쏘아올려…우주 독립시대 활짝- 말썽이던 3단 로켓 정상 작동…모든 것이 완벽했다△누리호 발사 성공-큐브위성 4기, 1년간 700㎞ 상공 돌며 한반도 열·미세먼지 모니터링- 한화 엔진, KAI 조립, 현대重 발사대 민간주도 ‘뉴스페이스 시대’ 열렸다- “우리별 1호 발사 30년…독자 우주발사체 결실”△尹정부 첫 부동산 대책- 임대료 5% 이내로 올린 집주인…2년 거주 안해도 양도세 비과세 혜택-분양가 1.5~4% 올린다고 하지만…현장 “사업비에 비하면 새발의 피”- 40년 만기 보금자리론에도 ‘체증식 상환’ 도입…초기 부담액 12~14% 줄인다- 임대차법 개정 먼 길…시장 불안 길어질라△종합-“6·7월 물가 더 뛴다”…빅스텝 명분 쌓는 이창용- 노동계 “최저임금 1만890원”…경영계 “폐업하라는 얘기”- 비대해진 경찰, 견제하는 행안부 인사·징계·감찰 권한 누가 갖나- 이자장사 경고에 놀랐나 은행들 대출금리 내린다- 경영계 “새 정부 강력한 리더십으로 규제개혁 추진해야”△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제도 손질해 능력있는 인물 ‘정치참여 통로’ 만들어줄 것- “이재명, 급한 마음에 개딸 독약 마셔…절연할 용기 있을지 의문”△정치-최강욱 중징계 후…둘로 갈라선 野- 李 어떤 결론나도…충돌 예고된 與-단순 세대교체로는 위기 못 넘어 우리만의 비전·청사진 보여줘야-尹 대통령 “공공기관, 호화 청사 팔아서 비용 줄여라”- “서민 기름값 감당 못한다”…여야, 유류세 인하 경쟁- 권영세 “리선권 통전부장과 언제든 대화 용의있어” △경제-공공기관 대수술 예고한 尹…文정부 기관장 물갈이 신호탄 되나-“에너지가격 결정구조, 정치에서 독립시켜야”-농식품부 “삼겹살 할당관세 물량 확대 검토”-내달부터 캐디·통학버스 기사도 고용보험 적용△금융-은행과 금리 경쟁 불붙은 저축銀 하반기 연4%대 예금 내놓을 듯-보험가입 늘고, 사고 줄고…손보사 車보험 손해율 ‘안정적’-강석훈 산은 회장 “부산 이전 소통위 구성”-금감원, 저축은행 불법 사업자 주담대에 칼 빼든다△글로벌-“뉴욕증시, 바닥 아직 멀었다”-러 가스 중단에 석탄으로 회귀 “EU, 재생에너지 집중해달라”-3년새 총선 5번?…이스라엘 연정, 1년 만에 해산 추진- 월경지 물자 경유 제한에 러, 리투아니아 보복 경고- 中완성차 수출 100만대 돌파△산업-아이오닉6·EQE…프리미엄 전기차 쏟아진다-엑스포 유치전 나선 최태원 회장 부산 대신 ‘코리아’ 내건 까닭은…-미래 원료 공급망 확보하라…호주로 날아간 최정우-LS전선아시아, 베트남 1위 통신사에 광케이블 공급△ICT-학계도 소비자도 “28㎓, B2C 활용은 비효율적”-‘우마무스메’ 애플 1위…카겜 성장 견인하나-LG유플러스 “알뜰폰 점유율 규제 반대”- 조규곤 “제로 트러스트 원칙 아래 보안 전략 다시 짜야”△소비자생활-BTS도 못구했다…포켓몬빵 사냥 나선 메이플빵- 쿠팡 김범석, 상장 후 첫 전직원 미팅…시장 급변 ‘생존전략’ 메시지 낼 듯-스타벅스, 자립준비청년에 3억원 정착금 지원- 배 음료로 맛있게 숙취 해소…코카-콜라 ‘I.d.H’ 출시 △증권-코스피 일단 반등했지만…악재 널린 ‘살얼음판’- 동학·서학개미 투심 ‘싸늘’ …“저점 매집 구간” 의견도-내다파는 외국인 엔터주는 담았다△증권-시장금리는 무섭게 오르는데 예탁금이용료는 ‘쥐꼬리 상승’-“잇단 상장사 횡령?…감사 강화로 드러난 것”-신입회계사 1300명 뽑는다…‘빅4’ 인력 모시기 경쟁 치열-거래소, 코넥스 기업 16개사에 ‘성장 사다리’ 지원△엔터테인먼트-쉼표 찍는 BTS ‘유종의 미’…신보 ‘프루프’로 증명한 월드클래스 위상- K팝 이끌 ‘포스트 BTS’ 누구…NCT 127·NCT드림·세븐틴 주목△Book-한국인과 내 소설의 공통점 시선이 늘 미래를 향해 있죠- 혐오의 시대…혹시 당신도 일베입니까- 자본주의는 왜 제3세계에서 실패했을까△오피니언-[목멱칼럼]푸틴의 오판-[데스크의 눈]유통규제 풀지 않고 물가 못 잡는다-[기자수첩]공공기관 경영평가 한계 보여준 한전 성적표△피플- 고집 세고, 개성 강해도 유대감 남달랐던…홍익대 미대 75학번들 다시 뭉쳤다- 초등교사 출신 첫 교총 회장 “교권 강화할 것”-수지 “10대부터 30대까지 연기”…역대급 변신- LG아트센터 서울, 마곡 시대 연다…10월13일 개관- HDC아이파크몰, 김대수 대표이사 선임-故 김지하 시인 49재 맞아 25일 추모문화제 열린다-‘현대 블루 프라이즈 디자인’ 최종 수상자에 박지민- 한국퍼스널모빌리티협회 창립 초대회장에 김필수 대림대 교수△사회-14만원짜리 ‘싸이 콘서트 티켓’이 28만원…온라인 암표거래 기승- 檢 ‘가짜 수산업자 게이트’ 결론 초읽기…박영수 운명은-법무부, 집행유예 스토킹범에 전자발찌 부착 검토- 여름철 코로나 재유행 온다는데 좀처럼 늘지 않는 접종률 어쩌나- 재개발 반대하며 버틴 을지면옥, 문 닫을까
2022.06.21 I 김소연 기자
기업의 별 임원 젋어졌다…3명 중 1명은 70년대생
  • 기업의 별 임원 젋어졌다…3명 중 1명은 70년대생
  • [이데일리 배진솔 기자] 올해 국내 100대 기업 임원 숫자가 작년 대비 200명 넘게 줄어들어 10년 전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반면 100대 기업에서 1970년대 출생 젊은 임원 비율이 올해 처음으로 30%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100대 기업 임원 변동 현황 (자료=유니코써치)글로벌 헤드헌팅 전문기업 유니코써치는 ‘2021년 국내 100대 기업 임원 연령대 현황 분석’ 조사에서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20일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기준 국내 100대 기업 임원 수는 666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6871명보다 207명 줄어든 숫자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인 2019년 당시 6932명과 비교하면 2년새 268명이나 임원 자리가 사라졌다.연도별 100대 기업 임원 숫자는 2010년(6000명)→2011년(6610명)→2012년(6818명)→2013년(6831명)→2014년(7212명)으로 점점 증가하던 양상을 보였다. 2015년(6928명)과 2016년(6829명)에는 감소했다가 2017년에는 6900명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2018년에는 6843명으로 전년보다 임원 수가 다시 줄었고, 이듬해인 2019년에는 6932명으로까지 임원 수가 많아졌다. 코로나19가 본격 발생한 작년에는 이전해보다 60명 정도 줄었다가 올해는 작년보다 200명 넘게 감소했다. 코로나19 본격 발생 이전과 비교했을 때 올해 국내 100대기업 임원 수는 4% 감축됐다. 6660명이 넘는 올해 100대 기업 임원 중 CEO급에 해당하는 사내이사 등기임원은 324명이었다. 이들 사내이사 중 가장 많이 활약하고 있는 출생년도는 작년과 비슷한 1960~1964년 사이 출생한 세대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320명이 넘는 등기임원 중 147명(45.4%)이나 차지했다. 1960년대 초반대 중에서도 1962년생이 35명이 가장 많이 활약하고 있었다. 이어 1964년생(34명), 1963년생(31명) 순으로 나타났다.대표적인 1962년생 최고경영자에서는 △두산(000150)그룹 박정원 회장 △삼성전자(005930) 한종희 사장 △현대차(005380) 하언태·장재훈 대표이사 △기아(000270) 송호성 대표이사 △삼성물산(028260) 고정석·오세철 대표이사 △KT(030200) 박종욱 사장 △대한항공(003490) 우기홍 대표이사 △LG유플러스(032640) 황현식 대표이사 △삼성SDS(018260) 황성우 대표이사 등이 내년에 환갑을 맞이하는 동갑내기 CEO급 경영자들이다. 1970년 이후에 태어난 사내이사도 37명이었다. 지난해 21명보다 1년 새 70% 넘게 많아졌다. 1970년 이후 출생한 CEO급 등기임원 중에서는 1970년생이 16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표적인 오너급에는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 △호텔신라(008770) 이부진 사장, △롯데칠성(005300)음료 박윤기 대표이사 △SK텔레콤(017670) 유영상 사업대표(MNO) △롯데쇼핑(023530) 강성현 전무·최영준 상무 등도 1970년에 출생한 100대기업 등기임원으로 활약 중이다. 등기임원과 미등기임원을 모두 포함해 올해 100대 기업 전체 임원 중에서는 1969년생 출생자가 663명(9.9%)으로 최다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968년생은 657명으로 두 번째로 임원이 포진됐다. 이어 1967년생(646명), 1970년생(575명), 1965년(536명), 1966년(529명), 1971년(519명) 순으로 100대 기업 내 임원 인원이 500명을 넘어섰다. 작년 대비 올해 임원이 가장 많아진 출생년도는 1971년생이다. 지난해 71년생은 424명이었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95명이나 임원이 늘어 500명대로 많아졌다. 이어 1970년생(20년 임원수 519명)과 1972년생(321명)도 작년 대비 올해 임원 명함을 받은 이가 각각 56명, 35명 증가했다. 70년대 후반생(75~79년) 임원 비중도 2018년 0.9%→2019년 2.2%→2020년 3.4%로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는 5.2%로 처음으로 5%대를 넘어섰다. 70년대 후반 출신 임원 수는 작년 234명에서 올해는 344명으로 100명 정도 많아졌다. 여기에 1980년 이후 출생자도 49명에서 63명으로 증가했다. 김혜양 유니코써치 대표는 “올 연말 내년 초에 단행될 2022년 대기업 임원 인사의 특징은 새로운 시대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IT 능력을 겸비한 인재들을 대거 임원으로 발탁하는 것과 함께 임원 임기만료를 앞둔 60년대들을 70년대생으로 전환하는 신구 임원 교체 현상이 강세를 보이게 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며 “특히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 학번에 속하는 세대들이 2022년 100대기업 임원 인사에서 40%를 넘어설 수 있을 지가 임원 인사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4년간 100대 기업 임원 연령대 변동 현황(자료=유니코써치)
2021.10.20 I 배진솔 기자

더보기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