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 내연남 살해한 수십억대 건물주…피해자는 양자였다[그해 오늘]

2010년 안양서 내연관계에 있던 양아들 살해한 60대 여성
잦은 음주, 여자문제로 갈등…보험금 노리고 자살위장 살해
수억대 보험 가입…범행 3년 만에 진실 드러나
  • 등록 2022-11-19 오전 12:03:00

    수정 2022-11-19 오전 12:03:0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2년 11월 19일.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가 60대 여성 윤모씨와 그의 30대 아들 A씨를 긴급체포했다. 혐의는 살인이었다. 피해자는 윤씨의 양아들이던 40대 채모씨였다. 윤씨의 며느리이자 A씨 아내도 함께 입건됐다.

경찰은 이들이 공모해 보험료를 노리고 채씨를 살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꾸몄던 걸까.

기사 내용과 무관. (자료사진)
안양에 40억원대(2012년 공시지가 기준) 상가건물을 소유했던 윤씨는 2002년 안양의 한 골프장에서 채씨를 처음 만났다. 남편과 이혼 후 혼자 지내던 윤씨가 당시 50대 중반이었던데 반해 채씨는 이보다 스무 살가량 젊은 30대 중반이었다.

경제력이 있던 윤씨는 전직 조직폭력배였던 채씨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 건달 생활을 그만두라”고 말했고, 채씨도 윤씨 요구를 따랐다. 두 사람은 서로를 ‘엄마’, ‘아들’로 호칭했지만 실제로는 연인관계였다.

윤씨는 얼마 후 용인에서 혼자 살던 채씨에게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도록 했다. 중년의 여성이 젊은 남성과 산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자 윤씨는 2004년 2월 채씨를 양아들로 입적했다. 동거 초반 좋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유지되지 못했다. 채씨의 과도한 음주와 여자 문제 등으로 다툼이 반복되며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시신서 80알 분량 수면제 성분 검출

갈등이 계속되며 윤씨의 분노는 점차 커져갔고 그는 2010년초 채씨를 사고사로 위장해 살해하고 보험금을 챙기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마련했다. 윤씨는 양자 입적 전부터 채씨 사망 시 보험금 1억 9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을 가입해둔 상태였지만, 살해계획을 세운 후 추가로 사망보험금 4억 4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전직 조폭으로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인 채씨를 힘으로 제압하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윤씨는 수면제를 먹여 의식을 잃게 한 후 연탄난로를 이용해 자살로 위장해 살해하기로 계획했다.

그리고 처방 등의 방법으로 졸피뎀 등 신경안정제 87알을 마련해 2010년 2월 이를 여러 방법으로 채씨가 먹도록 했다. 신경안정제를 먹은 채씨가 깊은 잠에 빠지자 연탄난로를 채씨가 잠든 방에 갖다놓는 등의 방법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게 했다.

새벽 시간 연탄난로를 방에 틀어놓은 채 사우나에 간 윤씨는 10시간 후 집에 다시 돌아와 방독 마스크를 쓴 채 새 연탄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그 후 안방에 머물던 윤씨는 저녁 무렵 채씨가 사망한 것을 확인한 후 119에 신고했다.

채씨가 숨지자 경찰은 살해혐의를 의심해 수사에 착수했다. 보험사들도 채씨 사망 직전 고액의 상해보험에 집중 가입한 것을 이상하게 여겨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경찰에 윤씨를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직접적인 살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윤씨는 수사 초기 “연탄가스 사고사일 뿐”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건물주로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윤씨의 ‘보험 가입은 재테크 목적이었다’는 주장을 깰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이다.

미제사건이 될 뻔했던 사건은 경찰이 2012년 5월 재수사에 착수해 윤씨 친아들 부부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며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초기 수사서 “연탄가스 사고”→재수사선 “동반자살 고심”

윤씨는 체포된 후 구속돼 살인과 사기미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윤씨는 초기 조사 때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동반자살 시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동반자살을 고심하다가 채씨 혼자 자살을 한 것이라는 게 윤씨 주장이었다.

그는 “숨진 채씨가 2008년께부터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해왔다. 저 역시 우울증이 심해지던 중 ‘함께 죽자’는 채씨 제안에 따라 자살을 위해 수면제를 처방받았는데, 채씨가 이를 이용해 혼자 자살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윤씨 주장에 따르면 윤씨에 대한 미안함으로 동반자살을 제안한 채씨가 수면제를 구입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없이 수면제 구입까지 윤씨에게 맡겼다는 것이 납득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소 지인들에게 ‘좋은 가족을 만나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등 행복감을 보였던 채씨가 동반자살을 제안한 윤씨에게 사망보험 가입을 요청했다는 윤씨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윤씨에겐 보험금 편취 목적 및 피해자와의 갈등관계와 피해자의 주폭 습성 등으로 인해 계속 발생하는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 등이 살인의 복합적인 동기가 됐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 냈다.

1심은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범행에 사용할 수면제를 구입하기 위해 아들과 며느리까지 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다만 윤씨와 살인 공범으로 기소된 윤씨의 아들과 며느리에 대해선 “살인을 공모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윤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지만 2심과 대법원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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