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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현 광주고법 판사는 17일 법률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는 것(헌법 제101조 제1항), 그리고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헌법 제103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정치권에서 여론조사를 근거로 재판이나 판결에 대해 ‘국민 다수에 반한다’고 비판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차 판사는 “이러한 공세 저변에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는 달리 법관은 국민이 직접 선거로 뽑지 않으므로, 이른바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며 “그래서 선거로 뽑힌 정치인들이 사법부에 일정한 ‘민주적 통제’를 가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차 판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부족’을 꼬집었다. 그는 “민주주의 이름으로 저질러질 수 있는 다수 횡포에 맞서 소수 쪽에 속하게 된 사람들의 기본권을 지켜 줄 또 다른 권력도 필요하다. 그 권력이 바로 민주주의의 한 축으로서의 사법권”이라며 “사법권이 다른 두 권력에 종속돼 있지 않아야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속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유럽에서 극우정당이 득세하며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파시즘 정권이 탄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인들의 자발적인 ‘트럼피즘’ 선택은 어쩌면 ‘민주주의의 실패’가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고 전했다.
차 판사는 “다른 두 권력(입법·행정)의 압박으로부터 사법부 입지란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으면서도 신분과 정년을 보장받으며 국가권력의 한 축인 사법권을 담당하기 때문”이라며 “한마디로 ‘판사, 니들이 뭔데’라는 공세에 속수무책이다. 국민 신뢰를 얻는 노력을 통해 법원은 그 존립 기반을 상시적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는, 다른 한편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이가 국가를 운영하는 전 과정에서 국민을 본위에 둔다고 하는 이념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사법권은 ‘선출 이후’, ‘입법 이후’를 주로 담당한다”며 “선거로 뽑아줬더니 ‘다수의 이름을 빌어’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이를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지 않고 ‘법치주의’로 통제하는 역할은 법원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