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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206560)스튜디오 자회사인 음향 전문 스튜디오 라이브톤을 이끄는 최 대표는 1997년 영화 ‘비트’(감독 김성수)를 시작으로 약 30년간 한국 영화 사운드의 기틀을 닦고 발전을 견인한 인물이다. 참여한 작품 수 350여 편. 역대 천만 한국 영화 24편 중 그의 손길을 거친 것만 12편이다. 봉준호, 김지운, 허진호 등 한국 영화 부흥을 이끈 감독들이 오늘날 세계 무대를 누비는 거장이 되는 과정을 함께했다.
봉 감독과의 연은 특히 깊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부터 최근작 ‘미키 17’까지 봉 감독이 연출한 모든 장편 영화(8편)의 음향을 맡았다. ‘미키 17’은 봉 감독이 ‘설국열차’와 ‘옥자’ 이후 할리우드와 협업한 세 번째 작품이다.
‘설국열차’와 ‘옥자’는 할리우드 작품이지만 한국의 제작 방식을 따랐던 반면, ‘미키 17’은 모든 과정에서 할리우드 방식을 준수했다. 최 대표는 “할리우드의 제작 시스템을 직접 체감해본 첫 작품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잊고 지내다 당시 ‘비트’를 제작한 제작사 대표의 제안으로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를 맡았다. 이 영화는 당시 흥행에 실패했지만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총소리가 들리는 액션없이 소소한 개인의 일상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깨닫게 한 작품이었다”며 “그렇게 두 번째 작품 ‘살인의 추억’으로 다시 연이 닿았고, 그 이후 모든 장편에 함께하게 됐다. 왜 나와 계속 일을 하는지 봉 감독이 말해준 적은 없다. 다만 서로의 작업 스타일에 불만이 없으니 계속 믿고 함께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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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에선 특히 크리퍼들의 목소리 구현과정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최 대표는 “알파카, 물개, 하이에나 등 동물들이 내는 울음소리에 실제 자신의 목소리를 입혀 감정을 표현했다”는 비하인드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미키17’을 비롯해 ‘옥자’, ‘괴물’ 등 봉 감독의 작품에 등장하는 크리처(괴물)들은 할리우드 크리처들과 행동 양식이 다르다”며 “할리우드는 크리처들이 일방적으로 포효하고 비명을 지르지만, 봉 감독의 크리처들은 인간과 교감을 한다. 동물의 소리만으론 감정을 입힐 수 없기에 사람의 목소리를 조합하는 거다. 실제 ‘옥자’ 땐 슈퍼돼지의 목소리에 이정은 배우의 목소리가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자신만의 작업 철학도 공개했다. 그는 “일상의 소리에서 영감을 얻는다. 또 그 소리가 스스로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 지에 주목한다”며 “예컨대 방금 전 소나기가 내린 후 날이 개 다시 쨍쨍해졌지만 도로가 젖은 상태를 상상해보자. 그때 자동차가 물 소리를 내고 물을 튀기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순간의 느낌, 자신은 그 느낌이 청량하고 시원했다. 그런 감정에 스스로 집중한다”고 묘사했다. 이어 “‘설국열차’의 기차가 철도를 지나가는 효과음은 다리 위를 지나는 KTX의 소음에 영감을 받았고, 혼자 넓은 지하주차장을 걸을 때 들리는 발소리의 울림, 당시의 긴장감은 ‘달콤한 인생’을 작업할 때 좋은 소스가 돼줬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이 일을 30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 스스로의 특별한 터닝포인트를 정의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매 작품을 만나 꾸준히 성장 중이기 때문”이라며 “최근에는 ‘하얼빈’을 믹싱할 때 발견한 테크닉을 ‘검은 수녀들’ 때 활용했다. 매번 다음 작품을 작업할 때 전작들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은퇴하는 마지막 영화를 만나야 정의가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