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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날은 2022년 7월 21일이었다. 경남 양산의 자택에서 잠을 자던 A씨는 이날 오전 5시 30분께 남편 B(사망 당시 30대)씨가 자신을 깨우자 거실로 나가게 됐다. 그러나 돌연 돌아온 것은 B씨의 성관계 요구였다. B씨는 자신 뜻대로 성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자 오전 7시께 부인에게 편의점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소주 1병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1잔을 사오라는 것이었다.
이에 A씨는 B씨에게 소주와 커피를 1잔씩 사다 줬지만 B씨는 또다시 성관계를 요구했다. A씨는 자녀들의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이를 거절했고 아이를 등원 차량에 태워 보낸 뒤 시어머니의 출근 준비도 마쳤다. B씨는 집에 돌아온 A씨에게 재차 성관계를 요구하던 와중 가학적 행위를 시도했고 급기야 흉기를 가져오라는 지시까지 했다.
오랜 가정폭력으로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놓였던 A씨는 남편의 말에 따르면서도 흉기는 이불 밑에 숨기고 “제발 이러지 말자, 이러면 안 된다”고 애원했다. B씨는 부인의 거부 의사에도 한 차례 더 성관계를 시도했고 “씻고 오면 잘 될 것”이라며 자리를 비웠다.
남편의 강압적 행위가 계속되자 A씨는 미리 빻아둔 수면유도제를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에 넣었다. 범행 2개월여 전 A씨가 처방받은 것으로 남편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일 때 사용할 목적으로 약통에 넣은 채 방 서랍에 보관해온 것이었다.
A씨는 두 자녀가 밖으로 나간 뒤 다시 방에 들어왔지만 B씨는 거듭 성관계를 요구했다. 이후에도 성관계는 B씨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그는 성관계 시도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등 과정을 이어갔다. 결국 B씨는 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던 끝에 수면제의 영향으로 잠이 들었다.
이에 A씨는 “남편이 없으면 모든 사람이 편하겠다”는 생각으로 살해를 마음먹고 흉기로 B씨의 신체 일부를 그었다. A씨는 잠시 방 밖에 나가 있다가 들어왔고 남편이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그를 질식시켜 살해했다.
조사 결과 A씨는 2012년부터 B씨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에 노출돼 있었다. 당시 B씨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술을 자주 마셨으며 2017년에는 건축 관련 사업을 시작하다 망해 가족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가정 경제가 극심하게 어려워진 이후 A씨는 가족과 이사해야만 했고 시어머니의 주거지에서 함께 살게 된 것이었다.
배심원 만장일치로 ‘징역형 집유’ 의견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유족은 이 사건 범행으로 소중한 가족을 잃고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됐다”며 “피고인은 피해자의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수년간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을 당해왔고 범행 당일에도 새벽부터 몇 시간 동안 폭력적인 행동과 가학적 성관계 요구가 이어지자 범행에 이른 것으로 참작할 사정이 있다”며 “피고인이 장기간 구금될 경우 자녀들이 보호 및 양육에 곤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사건 이전 아무런 범죄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불복한 검찰은 항소장을 제출했지만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공포심에 압도돼 피해자가 없어져야만 자신과 자녀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범행에 사용한 수면제에 대해서도 “이 사건 범행을 위해 구입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폭력적인 성향을 보일 때 일시적으로 잠들게 하고자 산 것으로 보일 뿐”이라며 “이 같은 범행의 구체적 경위를 고려할 때 이 사건 범행을 계획적 범행이 아니라 우발적 범행이라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