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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세금’ 부당한 낙인 속 감면 조치
감면 결정으로 부담이 준 출국자납부금은 연 1300억원 안팎. 국민 한 명당 2만 5000원꼴이다. 커피값에 우윳값까지 올라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새는 돈을 줄여준 걸 탓할 일은 아니지만, 짚어볼 문제도 있다. 바로 줄어든 부담금만큼 타격이 불가피해진 관광진흥개발기금 건전성이다. 당장 올해는 지난해 7월부터 반년 치 분만 반영돼 부담이 크지 않았지만, 내년부턴 2배인 1300억원이 넘는 감소분을 메워야 할 처지다.
더 큰 우려는 구조적으로 기금 수입 감소가 도미노처럼 정부 관광 재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출국자납부금, 카지노납부금이 주요 재원인 기금은 1조 3000억원 언저리인 정부 한해 관광 예산의 80%를 조달하는 ‘돈줄’이기 때문이다.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단행한 부담금 감면이 결국 돌고 돌아 관광·여행 업계는 물론 전체 국민에 피해로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반면 해외에선 관광 재정을 늘리기 위해 출국자납부금 같은 부담금을 오히려 늘리고 있다. 명목도 출·입국세 외에 관광세, 숙박세 등으로 다양하고, 규모도 1인당 평균 3만~4만원으로 한국의 서너 배에 달한다. 출국세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 1000엔(약 9400원)을 부과하던 일본은 최대 5배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림자 조세’ ‘깜깜이 세금’으로 낙인이 찍혀 폐지·감면 대상이 되긴 했지만, 부담금은 원래 과도한 세(稅)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됐다. 전 국민에 일괄 부과하는 보편 과세와 달리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과 서비스의 수혜, 이득을 보는 이들에게만 부과하는 ‘수익자 부담’이 기본 원칙이다. 1776년 <국부론>에서 과세의 평등을 강조한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도 특정 대상에 사용료(user fee)로 부과하는 부담금 자체를 대다수 국민의 조세 부담을 덜면서 정부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방안으로 봤다.
정책의 일관성만큼 중요한 건 유연성이다. 긴 숙의를 거친 정책이라도 그 피해가 돌고 돌아 결국 국민에게 전가된다면 과감히 재검토해야 한다. 출국자납부금 감면 혜택의 절반 가량이 국민이 아닌 외국인 방문객에게 돌아가는 실상도 되짚어볼 문제다. 애덤 스미스는 “어떤 정부가 다른 정부로부터 배우는 기술 중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끄집어내는 기술보다 더 빨리 배우는 것은 없다”고 했다. 세수(稅收) 확보에 혈안이 된 정부를 비꼰 말이지만, 지금 우리는 그 기술을 배워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