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범 나이 어려...그 가족도 힘들어" 재판관의 막말 [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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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나쁜 애 아닐 것" 성폭행 가해자 두둔
"피해자, 지적장애인이라 인지 못했을 것"
"그리 특별한 경우도 아냐"
"돈 받아 동생 좋아하는 거 해주면 좋지 않냐"
재판에서 쏟아진 말말말...法, 가해자 결국 선처
  • 등록 2025-10-17 오전 12:00:03

    수정 2025-10-17 오전 12:00:03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가해자 가족도 힘들다” “가해자 나이가 어린데 합의해 줄 수 없나?”

판사가 피해자의 언니에게 물었다. 피해자는 재판에서조차 가해자를 마주치는 게 두려워 출석도 못 한 상황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
2023년 10월 17일, 성폭행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가 법정에서 지적 장애인인 피해자의 인지 부족을 탓하고 금전적 합의를 강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대구지법 형사11부(부장 이상오)는 2022년 1월 강간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A군 선고기일에서 “사건을 소년부에 송치하라”고 결정했다. 검찰은 A군에게 징역 6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에서 형사처벌을 면하고 소년보호재판으로 보내기로 선처한 것이다.

A군은 2021년 1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게 된 피해자를 유인해 공원 화장실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당시 A군은 18세, 중증 지적장애인인 피해자 B양은 16세였다. A군은 B양에 신체 사진을 요구했고 B양은 마지못해 이를 보내다 직접 만남까지 이어졌다.

이후 B양은 공원 화장실에서 피투성이 모습으로 발견됐다. A군은 피해자를 성폭행하며 수술이 필요한 심각한 상처를 입힌 뒤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그대로 도주했다.

A군은 체포 직후 혐의를 부인하다 여러 물증 앞에 범행을 시인했다. 그렇게 A군은 강간치상으로 기소돼 대구지법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B양은 물론 그 가족의 일상은 파괴됐다. B양은 가해자가 눈앞에 있다며 환각에 시달리고 수시로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다며 제 살을 쥐어뜯었다. 또 “여자로 보이기 싫다”며 가위로 머리카락을 마구 잘랐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도 여러 번이다. 이 때문에 폐쇄병동에서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가족의 삶 역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을 정도로 피폐해졌다.

B양의 언니 C씨는 동생에게 가해자를 꼭 감옥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가족은 오로지 A군이 감옥에서 죗값을 치르는 것만을 바랐다.

그러나 재판은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결정문에 담긴 이 판사 발언은 다음과 같다.

이 판사는 A군이 보호처분이나 형사처벌 받은 적은 없다는 점을 들어 “(피고인이) 정말 질이 나쁜 애는 아닐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나쁜 학생으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또 “피해자는 지적장애인이니까 일반인처럼 인지하지 못했을 거다” “이 사건의 지적장애인 사건이 많다. 그리 특별한 경우도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그는 “피해자 가족도 힘들겠지만, 피고인 가족들도 힘들어서 상담치료 받고 한다”며 “피해자 가족만 힘든 상황이 아니니 그것도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합의 의사가 없다’는 피해자 측 답변에도 “돈 받아서 동생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면 좋지 않겠냐”며 “민사 소송을 하려고 합의를 안 하느냐. 소송 비용만 들고 보상 금액이 적은데 지금 합의해 주면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재판을 마친 C씨는 끝내 트라우마 증상을 보여 응급실로 이송됐다. C씨는 “속으로 계속 ‘무슨 헛소리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동생이 정신과 약을 하루에 열 알이 넘게 먹고 힘들어하는데, 애 살려보겠다고 (엄벌해 달라) 하는 건데. 말 몇 마디로 우리를 다시 죽음에 내몬 것”이라고 털어놨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새로 임명된 판사들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기사와 무관한 사진 (사진=뉴스1)
결국 재판부는 두 달 뒤 열린 선고공판에서 A군의 강간치상 혐의 사건을 소년부로 송치하는 결정을 내렸다. 앞서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징역 6년을 구형했으나 형사처벌 대신 소년 보호처분을 받도록 선처한 것이다.

이례적으로 검찰이 항고·재항고했으나 대구고법과 대법원은 기각했다. C씨는 소년보호재판을 방청하러 대구가정법원을 찾아갔으나, 피해자 쪽이 배제되는 소년보호재판 특성상 방청은커녕 결과조차 통보받지 못했다. A군에게 ‘10호 처분’이 내려졌다는 사실도 겨우 알아냈다. ‘10호 처분’은 소년보호재판에서 가장 무거운 처벌이지만 형사재판과 달리 전과가 남지 않고 최장 2년 이하 소년원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차마 재판 결과를 동생과 가족에게 알릴 수 없었던 C씨는 2022년 7월 “재판장이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요하고, 피고인도 피해자만큼 힘들다는 둥 피해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으로 피해자 가족들에게 2차 가해를 하여 신체적,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며 “성 인지 감수성이 없는 재판장이 법정에서 이러한 발언을 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으로 대법원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은 “소송지휘권의 범위를 벗어난 재판 진행이나 부적절한 언행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민원회신을 보냈다.

인권위 판단은 달랐다. 인권위 침해구제 1위원회는 진정인과 해당 판사, 참고인의 진술과 공판 조서를 종합하면 문제의 발언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법원행정처장에게 후속 조치를 권고했다.

이 판사는 법관의 재판은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인권위는 “재판 절차나 소송지휘에 필요한 발언이 아닌, 당사자를 모욕하거나 명예를 실추하는 발언·부당한 부담을 주는 발언은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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