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가해자가 ‘그 사람’”…27세 예비 신부는 왜 사망했나 [그해 오늘]

마트서 몰카 찍다 걸린 임상병리사 A씨
휴대전화서 병원 등 31건 몰카 쏟아져
피해자 중에는 친한 동료 여성 B씨도
예비 신부 B씨, 병원 정규직 꿈꿨지만
좌절된 꿈…그가 택한 건 죽음이었다
  • 등록 2024-11-13 오전 12:01:02

    수정 2024-11-13 오전 12:01:02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19년 11월 13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 2단독(설승원 판사)은 38세 남성 A씨에 종합병원 등에서 몰래카메라를 찍은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3년간 아동·청소년,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사진=SBS 궁금한 이야기Y 유튜브 캡처)
재판부는 “피해자 가운데 1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유족과 다른 피해자들이 엄벌을 탄원한 점과 A씨가 범행을 자백하고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 동종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사건은 그해 7월 순천의 한 마트에서 시작됐다. ‘누군가 과자 고르는 여성 뒤에서 몰래카메라를 찍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그곳에서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하지만 뚜렷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던 경찰은 A씨를 풀어줬고 추가 범행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경찰이 A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으로 복구하자 다양한 몰카 사진이 쏟아져 나왔다. 병원 엘리베이터, 어린이집, 대형마트, 공항 면세점 등에서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을 몰래 촬영한 것이다.

특히 순천의 한 대형병원 탈의실에서 찍은 사진들도 있었는데, 피해 여성들은 해당 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한 가해 남성 A씨와 해당 병원에서 매일 마주치며 담소를 나누던 사이였다.

◆ 27살 예비신부의 비극

같은 임상병리사였던 B씨도 피해 여성 중 한 명이었다. B씨는 마트 몰카 사건 12일 후 경찰로부터 A씨가 찍은 몰카 피해자라는 연락을 받았다. B씨는 경찰서로 가 자신도 모르게 찍힌 영상을 확인했다.

A씨는 B씨와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로 해당 병원에서 함께 일하며 B씨에게 “힘내라”고 덕담을 건네던 사이다. 또 A씨는 병원에서 건실하기로 소문난 남성이었다. 앞에선 B씨에게 격려한다며 두드리던 손길이 사실은 자신을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불안감을 호소하는 A씨에 경찰은 “가해자와 분리 조치될 것”이라고 했고 이를 믿고 다음 날 출근했지만 B씨의 생각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B씨의 아버지는 사건 이후 방송된 ‘궁금한 이야기Y’를 통해 “그날 덜덜 떨면서 (딸에게) 전화가 왔다. 물 한 잔 마시고 (진정한 뒤) 전화를 해라 했지만 5분도 안 돼서 다시 전화가 왔다”며 “그때서야 ‘누가 몰카를 찍었는데 그 몰카 가해자가 출근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의 말과는 달리 병원 측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 조치하지 않았다. 떨린 목소리로 고통을 호소한 B씨는 병원 측에 이를 항의했고 겨우 분리 조치 됐지만, 심리 상담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또 한 번 가해자 A씨를 마주치게 됐다. 그럴 때마다 B씨는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깨어나기 일쑤였다.

병원 탈의실 의문의 구멍27세 임상병리사는 왜 사망했나 [그해 오늘]
두 달 뒤인 그해 9월 24일 B씨는 예비 신랑 C씨와 함께 집으로 향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B씨가 목숨을 끊는 모습을 목격한 C씨는 숨을 헐떡이던 B씨에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결국 B씨를 잃고 말았다. 그는 “A씨가 숨겨진 카메라가 아니라 자신의 휴대전화로 교대시간에 B씨의 옷 갈아입는 그 순간을 찍었더라”며 “일부러 노리고 한 게 분명했다”고 밝혔다.

◆ 가해자는 퇴직금 챙기고 피해자는 사망

당시 해당 병원의 탈의실은 남녀가 함께 출입이 가능한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허술한 관리 속에 피해자만 고스란히 그 피해를 떠안고 있었다.

B씨는 정규직 직원이 임신한 동안 고용된 임시직이었고, 정규직 전환의 희망을 품으며 하루하루 일하던 20대 노동자였다. A씨는 몰카 사건 이후 ‘몰카 피해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소문이 나면 다른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다 사건 이후 해당 병원 측에서는 B씨에 정규직 전환을 해줄 수 없다는 통보를 했던 것. 희망을 잃은 B씨는 극단적 선택을 했고 그렇게 27살 예비 신부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이에 대해 병원 관계자는 ‘궁금한 이야기Y’를 통해 B씨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 “몰카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며 “병원이 직원들에게 몰카를 찍으라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책임을 회피했다.

정작 가해자인 A씨는 해임 처리돼 퇴직금까지 고스란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법원은 검찰이 구형한 징역 2년보다 낮은 형을 선고했고, 신상정보 공개명령도 공개하지 않을 사정이 있다며 선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선고 후 피해자 유족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유족의 마음을 헤아려서 판결을 해준다고 했는데 징역 10개월이 어떻게 유족들 마음을 헤아린 판결이냐”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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