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가수 설운도가 트롯 대부 고(故) 송대관을 언제나 최고일 수밖에 없던 노력형 가수로 기억했다.
 | 설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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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고(故) 송대관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이날 영결식장에는 고인의 유가족을 비롯해 태진아와 이자연, 김광진, 배일호, 설운도, 김창렬, 문희옥, 김혜진, 강진, 박상철, 김수찬, 양지원, 배우 김성환 등 수많은 연예계 동료 및 후배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사회는 대한가수협회 복지위원장인 가수 염정훈이 진행했다. 대한가수협회장인 이자연이 조사를 맡고 추도사는 태진아와 강진이 낭독했다.
설운도는 이날 영결식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고인에 대한 기억을 털어놓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는 “가요를 사랑받게 해주신 분이다. 저도 서울에 가수 데뷔했을 때 정말 우러러봤던 선배님이셨고 같이 활동도 하면서 참 많이 배웠다. 또 열심히 사셨던 분”이라며 “특히 저는 송대관 선배님 기억나는 점이 굉장히 욕심 많으셨던 분”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밖에 없었던 노력형 가수”라고 고인을 추억했다.
설운도는 “저도 마음속으로 꼭 선배님처럼 노력해야겠다 생각하곤 했다. 또 가정도 잘 이끌어오셨고, 덕분에 아이들도 잘 자라준 것 같다. 평소에 얼마나 잘 사셨는지, 드러나는 게 참 많은 분들이 바쁜 시간에도 빈소까지 와서 함께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더 그렇게 잘 살아야겠다고 저는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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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얼마 전에 현철 선배님을 떠나보내고 비보를 또 이렇게 들으면서 너무 충격받았다. 지금 가요계 후배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살아남은 선배님들이 몇분 안 계시다.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라며 “그래도 그동안 여러분께서 큰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위안이 된다. 가수는 결국 무대에서 시작해서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선배님이 하고 싶은 일을 웃으면서 하시고 가셨기 때문에 후배로서 마음은 아프지만 그래도 그 꿈은 펼치고 가셨기 때문에 마음이 놓인다. 형님의 빈 자리를 여러분이 사랑으로 채워주시길 바란다. 형님이 평생을 힘들게 노래하셨기에 그곳에선 편안히 영면하시길 빈다”고 덧붙였다.
송대관은 지난 7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79세. 소속사 관계자는 “최근 피로로 입원 중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지난 7일 오후부터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송대관의 두 아들, 아내 이정심 씨가 상주로 조문객들을 맞았다. 고인과 친형제처럼 각별히 지냈던 태진아가 이틀 내내 빈소를 지켰고, 이자연과 강진, 혜은이, 배우 최다니엘, 개그맨 오정태, 배우 이숙 등이 조문해 고인을 추모했다. 이튿날인 8일에도 설운도, 하춘화, 김혜연, 이상용, 정수라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떠나보냈다. 이밖에 가수 나훈아, 정훈희, 조용필, 이승기, 김종서, 임영웅, 영탁, 방송인 김구라 등이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전했으며,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영선 전 의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고인을 추모했다. 우원식 국회의장,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등 정치인들의 조화도 눈에 띄었다. 가수 양지은, 김수찬, 태진아의 아들 가수 이루, 인순이, 개그맨 조혜련 등도 SNS로 고인을 기렸다.
1945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한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후 1975년 발표한 ‘해뜰날’이 대히트를 기록하자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1976년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고가수상 등 각종 시상식 트로피를 휩쓸며 대한민국 대표 트롯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에도 ‘정 때문에’, ‘차표 한장’, ‘고향이 남쪽이랬지’, ‘네 박자’, ‘유행가’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남겼다. 제2대 가수협회장을 지내는 등 가요계 발전에도 힘썼다. 1999년 국무총리 표창, 2001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한편 고인의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졌으며 고인과 절친한 사이인 태진아와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이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오전 11시 발인 이후 서울추모공원에서 영면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