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반도체 장비업체의 B 이사는 최근 주 52시간 예외 조항 신설을 골자로 한 반도체특별법 논의를 두고 이렇게 토로했다. 수주받은 프로젝트를 제때 수행하려면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분명 존재하는데, 획일적인 주 52시간 규제 탓에 고객사 대응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의 쌀’ 반도체는 데이터센터, 전자기기, 자동차, 로봇 등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칩 공급이 자꾸 늦어지면 산업 판에서 금세 소문이 돈다.
게다가 지금은 중국의 기술 굴기와 미국의 부활 의지 등 반도체 이중고(二重苦)와 마주하고 있다. B 이사는 “지금 한국 기업들끼리 경쟁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연구개발(R&D)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시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주요 기업 연구부서 4곳 중 3곳은 주 52시간제 탓에 R&D 성과가 줄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산업계의 요청은 생사가 걸려 있다시피 한 정도다. 또 다른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부품업체의 C 대표는 “6시 땡 하면 퇴근하는 문화가 너무 굳어졌다”며 “(주 52시간제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특별연장근로 같은 제도는 전혀 활용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일을 더 해야 하는 경우 미리 날짜와 시간 등을 매번 정부에 신청해 승인받아야 하는 탓에, 현실적으로 유명무실하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를 보면, 주요 기업 연구부서들의 75.8%는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R&D 성과가 줄었다”고 답했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특별법 제정과 함께 △노사 합의를 통한 자율적 관리 △근로시간이 아닌 프로젝트 단위의 유연한 규제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종훈 산업기술진흥협회 상임이사는 “반도체 등의 R&D 부문은 유연한 근로시간 확보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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