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애의 씨네룩]'사라진 시간'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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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LOOK..'사라진 시간'
정진영 각본·연출
  • 등록 2020-06-24 오전 6:20:00

    수정 2020-06-24 오전 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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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 호접지몽(胡蝶之夢). ‘나비가 된 꿈’을 뜻하는 말로서,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돼 노닐며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구별을 못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최근 개봉한 ‘사라진 시간’이 딱 그런 이야기가 아닐는지(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는 도시를 떠나서 시골의 한 마을에 정착한 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부부는 금슬 좋기로 소문나 주위에 부러운 대상이 되지만 말 못 할 비밀이 있었으니, 밤만 되면 아내가 ‘돌변’하는 것이었다. 이내 부부의 비밀은 마을 전체에 퍼지고, 이어 발생한 의문의 화재가 부부의 목숨을 앗는다. 사고 현장을 살피던 형사는 입을 꾹 다문 마을 사람들이 수상하고, 단순 사고가 아님을 확신하며 사건에 파고든다. 영화는 여기까지 형사인 형구라는 인물의 시점을 따라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장르를 따른다.

그러나 형구가 사건 현장에서 술에 취해 자다가 깬 뒤부터 영화는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형사였던 형구는 교사가 돼 있고 유력하다 의심했던 용의자는 이웃이 돼 있으며 처에 자식, 집까지 온데간데없어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아와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형구는 속이 답답하다 못해 터지기 직전이다. 주변에서는 “도대체 왜 그러냐” “정신 좀 차려라”며 자신이 모르는 자아와 삶을 강요한다. 타인과 세계가 규정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때의 형구의 시점에서 영화의 장르는 낯설게 변해있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에 꿈이 한 순간의 꿈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꿈이 연속성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꿈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현실이라 착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전에 현실로 믿었던 세계가 꿈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실이거나 현실로 믿었던 세계에서의 나와, 꿈이거나 꿈인 줄로 안 세계에서의 나 가운데 누가 진짜 나인가. 나는 어떤 세계에 발 딛고 서야 하는지, 아니면 양쪽 세계에 한 발씩 걸쳐놔야 하는지. 정체성이라는 것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타인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이 부여한 정체성을 그냥 수용하면 되는 건지. 그건 또한 나일 수 있는 건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요즘은 꿈보다 가상의 세계가 더 현실과 자아를 위협하는 시대이다. 무한한 가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수한 나로 존재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현실과 가상의 혼동으로 정체성이 약해지는 시대에서 나는 누구인가. ‘사라진 시간’이 묻는다.

감독 정진영. 러닝타임 105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6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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