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후 방구석 10년"…한심한 백수에게도 사정은 있다

공백기·우울증 등 발목…취업 시기 놓쳐
온라인 ‘장기백수 대화방’…서로 위로·응원
전문가들 “각자 처한 상황 맞는 대안 필요”
  • 등록 2024-10-04 오전 12:35:00

    수정 2024-10-04 오전 12:35:00

[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집에 오래 있다 보니 사람을 대하는 것도 서툴고, 저 사람은 날 싫어할 거라는 생각도 강하게 들어요.”

경북에 사는 이모(28)씨는 3일 이데일리에 취업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고백했다. 이씨는 지난 2020년 겨울, 지방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뒤 기업에 이력서를 제출한 적이 없다. 혼자서 일할 수 있는 주말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최근에 그만뒀다. 그의 하루는 집안일 돕기와 게임, 독서, 유튜브 시청으로 채워졌다. 이씨는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갈 때만 가끔 외출한다”며 “학창시절 소외당한 경험 때문에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취업도 회피하게 됐다”고 했다.

지난달 19일 서울시 청년일자리센터에 마련된 소파에 한 청년이 엎드려있다. (사진=연합뉴스)
‘쉼 청년’이 늘었다는 통계가 나왔지만 이데일리가 만난 다수의 쉼 청년은 “쉬고 싶어서 쉬는 것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우울증·불안과 같은 정신 질환 때문에 취업시기를 놓치거나, 직장 내 괴롭힘 같은 애로로 인해 퇴사 후 구직활동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쉼 청년을 비난하기 보다 각자의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통계청이 지난달 19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청년층(15~29세) 부가 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최종 학교를 졸업했지만 3년 이상 취업하지 않은 청년은 지난 5월 기준 23만8000명으로, 코로나19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강원 태백에 사는 김모(26)씨도 대표적인 쉼 청년이다. 김씨는 대학 시절부터 겪은 정신 질환으로 인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지난 2월, 입학 7년 만에 졸업했다. 이후 9개월째 구직을 하지 않고 쉬는 중이다. 김씨는 “대학을 다니다 병 때문에 쉬기도 했고 병원도 맞는 곳을 찾아 옮겨다니느라 시간이 지났다”며 “낫고 나니까 20대 중반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는 장기간 구직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장기 백수 대화방’도 등장했다. 이데일리가 SNS 익명 채팅방에 검색한 결과 이들의 주된 채팅방 검색 키워드는 △장기 백수 △불안 △우울 △은둔 등이었다. 한 장기 백수 대화방의 관리자인 A(35)씨도 구직을 쉬는 청년이다. 11년간 은행 정규직으로 일하다 올해 초 퇴사한 A씨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대인기피증, 공황장애 등 정신과적 문제가 생겼다”며 “다 나을 때까지는 병원이 아니면 외출을 안 하고 구직도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청년들의 구직 포기 배경에는 정신적·환경적 어려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불안 및 우울증 치료제인 정신신경용제(아프라졸람, 디아제팜 등)의 경우 20~29세의 1인당 평균 처방량은 2014년 44.9개에서 2023년 117.5개로 2.6배 증가했다. 30~39세도 10년 전 59.6개에서 지난해 122.5개로 처방량이 2.1배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뤄진 코로나19 상황이 청년들의 정신적·사회적 고립을 심화시켰다고 분석했다. 백명재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에 가장 좋지 않은 것 중 하나가 고립”이라며 “코로나19 때문에 대인관계나 사회 불안이 더 악화했다고 보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 자체가 청년들에게 호의적인 구조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쉬는 청년들을 낙인찍기보다는 오랜 기간 쉬면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에 대한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며 “이들도 지역 사회 주민인 만큼 지자체에서 이들에게 밀착해 관심을 갖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방법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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