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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데뷔작 ‘청소’ 개봉 당일, 아버지를 여읜 영화감독 이제하는 자신의 성공이 영화계 거장이었던 아버지의 명성 때문이라 여기며 차기작을 찍지 못하고 있는 상황. ‘청소’를 통해 함께 영화계에 발을 들였던 배우와 제작자는 모두 다음 걸음을 딛고 있지만 이제하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이 허상이라는 의심에 사로잡힌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그런 만큼 아버지의 영화 ‘하얀 사랑’의 리메이크 제안은 이제하에게 독이 든 성배와 마찬가지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결국 이를 떨쳐버리지 못했던 것. 특히 ‘하얀 사랑’은 어머니가 죽은 뒤 아버지와 아버지의 연인이 만든 만큼 이제하에게는 역린이나 다름없었기에 이제하는 계속해서 이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영화인 만큼 현대적 시각에 맞춰 각색 작업에 열중하던 이제하는 여자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시한부 설정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자문을 받으러 다녔다. 의료 자문을 맡은 김민석(장재호)은 이제하가 말한 ‘6개월의 시간이 남은 환자’의 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문가를 섭외했고 그렇게 영화감독 이제하와 시한부 환자 이다음의 만남도 성사됐다.
구김살 없이 밝고 명랑한 이다음이 가지고 있던 슬픈 반전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장례지도사를 찾아가 빈소를 화사하게 꾸미는 방법에 대해 묻고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의 순간들을 캠코더에 담아내며 언젠가 다가올 엔딩을 준비하는 이다음의 모습은 뭉클함을 안겼다.
이미 이제하와 이다음은 우연한 계기로 여러 차례 서로를 마주쳤던 상황. 영화관부터 편의점, ‘하얀 사랑’을 상영해주는 동네 영화관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바, 이다음은 이제하에게 “자문을 맡게 된 시한부 이다음이라고 합니다”라며 영화감독과 시한부 자문으로서 인사를 나눠 이들이 만들 ‘하얀 사랑’이 궁금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화면비율과 색감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은유하는 이정흠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함께 남궁민(이제하 역), 전여빈(이다음 역) 등 캐릭터에 녹아든 배우들의 열연이 어우러져 모두를 극 속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에 연출과 스토리, 연기까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우리영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고 있다.
‘우리영화’는 오늘(14일) 오후 9시 50분에 2회가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