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출신 변호사는 반려동물 소송만 할까?[이상한 변호사]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반려동물과 관련된 소송보다는 농수축산, 식품, 의약 등의 분야의 소송 및 자문, 입법과정에서의 조언 등을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수의료소송(수의사의 진료상 과실에 대해 반려동물의 보호자가 수의사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은 아직 한계가 있어요.”

건국대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수의사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이형찬 법무법인 대화 변호사는 국내 수의료소송 분야의 성장성을 기대하면서도 의료소송과 비교하면 현실적인 한계가 뚜렷하게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형찬 법무법인 대화 변호사. 이형찬 변호사 제공

30일 이형찬 변호사에 따르면 의료소송은 연간 1000건 이상 진행될 정도로 수요가 많고, 관련 사건인 산업재해·국가유공자 소송도 빈번히 발생한다. 그에 반해 수의료소송은 아직 통계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의료소송의 경우 대학병원 등의 감정을 통해 의사의 과실에 대해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수의료소송은 수의사의 과실을 입증하는 감정절차가 확립돼 있지 않다는 어려움도 있다.

이 변호사는 “앞으로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고, 보호자들의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수의사의 진료상 과실을 묻는 소송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면서도 “의료소송과는 다르게 수의료소송은 소액 사건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보호자 측에서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창시절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했던 줄기세포에 대한 관심으로 수의학과를 선택했다. 당시만 해도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실험실에 들어가 기초과학자로 살아가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불거진 줄기세포 연구윤리 문제는 이 변호사의 꿈을 바꿔놨다.

이 변호사는 “과학이 발전하고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법과 제도,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마침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고 변호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법학에 대해 미리 학습할 기회가 없었기에 그에게 로스쿨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다른 변호사들과 다르게 확실한 전문 분야가 있다는 점이 경쟁력이 됐다. 그는 “농축산업, 식품, 환경 등의 분야를 이해하고 해당 전문가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변호사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며 “관련 분야의 회사 등 고객들도 소통이 되는 변호사라고 반겨주셔서 어렵지 않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노동, 지식재산, 특허 등 법률분야별 전문성을 주로 강조하지만 ‘산업분야별 전문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백신 관련 소송, 질병 전파 관련 소송처럼 전문적인 분야의 소송을 진행할 때 의뢰인이나 전문가들이 변호사가 상당한 정도의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 하에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의사 출신으로서 큰 장점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그는 “관련 소송에서 수의사 출신 변호사로서 해당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의뢰인과 원활한 소통을 통해 여러 입증자료를 확보하고 전문가 조언을 들어 소송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며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증거서류를 제출하거나 증인신문 등의 과정에서 의뢰인에게 유리한 쟁점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수의사는 우리 사회에서 방역, 공중보건, 식품안전, 동물의 치료 등을 담당하며 각 영역에서 스페셜리스트로서 활동하고, 변호사는 이런 각 분야에 대한 법률체계를 고민하면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 수의사와 변호사를 모두 경험한 이 변호사의 결론이다.

이 변호사는 “수의사의 지식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식품안전, 환경위생, 공중보건 등의 분야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형찬 변호사가 한국동물약품협회에서 주최한 2017년 하반기 ‘동물용의약품 등 산업 발전을 위한 동물 약사 업무 워크숍’에서 ‘동물용 의약품 관련 법적 분쟁 사례 및 대응 방향’이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이형찬 변호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