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만 해도 명절 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제기차기를 하거나, 목욕탕을 가거나 하는 모습들이죠.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문화들이 이를 대체하면서 많은 풍경들이 변했습니다. 명절을 맞아 조금은 희미해진 추억을 다시 꺼내보며 이야기를 나눠보시면 어떨까요.
[이데일리 김현재 기자] 세상은 변한다. 차례상도 예외는 아니다. 간소화 추세와 식생활 변화에 따라 각종 전과 적, 3색 나물, 탕과 국, 송편, 포와 과일 등으로 대표됐던 추석 차례상의 모습이 다양해지고 있다. 여전히 ‘홍동백서(제사상에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 일)’나 ‘조율이시(대추·밤·배·감)’ 방식이 정답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본래 제사와 차례의 음식 진설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집안마다 지역마다 다르게 차렸다. 시대 흐름에 맞춰 유쾌하게 변하고 있는 차례상의 모습을 소개한다.
 | | 조민주(32)씨가 지난해 추석에 차린 채식 차례상의 모습.(사진=조민주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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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대신 연근전…‘채식 차례상’도 등장 기름지고 열량이 높은 명절음식 탓에 누구나 한 번쯤 명절 연휴가 끝난 뒤 체중이 증가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건강하고 부담 없이 명절음식을 즐길 방법은 없을까. ‘채식 차례상’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저마다의 이유로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이 늘면서 채식 차례상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환경교육 강사이자 농부인 조민주(32)씨는 9년 차 ‘채식주의자’다. 조씨는 “건강 회복을 위해 시작한 채식이 어느덧 일상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환경과 동물권을 지키기 위해 채식을 지속하고 있다”며 채식 차례상의 장점으로 ‘건강함과 지속가능성’을 꼽았다. 음식 낭비 없이 먹을 만큼만 부담 없이 차리고, 기후변화를 막는 데도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무엇보다 설거지 같은 뒷정리가 상당히 편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강성미 유기농문화센터 원장은 ‘유기농 비건 차례상’을 차리고 있다. 유기농 음식문화와 조리법 등을 교육하는 그는 “차례상에서 중요한 것은 음식의 화려함이 아니라 정성과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며 “비건 요리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리가 되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 원장은 “비건 차례상이 처음에는 낯설 수 있지만, 작은 실천이 지구와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며 “조상님들께서도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전통적인 방식의 비건 차례상을 선호하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추석에 버섯을 사용한 잡채, 계란을 사용하지 않은 삼색 연근전 등의 요리를 해볼 것을 권했다.
 | | 강성미 원장이 만든 삼색 연근전. 연근에 노랑파프리카·당근·피망 소를 넣고, 달걀 대신 강황가루와 통밀가루 또는 우리밀가루을 입혀 부쳐냈다.(사진= 강성미 원장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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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롱, 샤인머스캣도 올라가는 요즘 차례상, 괜찮을까? MZ세대가 좋아하는 음식도 점차 차례상에 오르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찾아보면 ‘차례상에 마카롱과 샤인머스캣 올렸다’는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방모(28)씨는 5년 전부터 차례상에 한과 유과 대신 빵집에서 파는 디저트를 올리고 있다. 방씨는 “처음에는 부모님도 반대하셨지만, 이제는 차례상을 준비할 때 부모님이 먼저 각자 좋아하는 디저트와 과일을 사오시더라”며 웃었다. 그는 “손이 잘 안 가는 음식을 차례상에 올려 버리는 것 보다 가족들이 선호하는 음식을 올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차례상 문화에 대해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MZ 세대만을 위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또 ‘차례상은 조상에게 바치는 음식인데, 무조건 선호하는 음식만 올려서는 안 된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 둘이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고 조언한다. 이권재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은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고 자신의 뿌리인 조상을 되돌아 보는 것이 우리나라 명절의 본질”이라며 “허례허식 없이, 가족 간 화합을 이룰 수 있는 방식으로 차례를 지내면 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서산 김흥락 선생은 ‘차례상은 과일 두 가지, 적(炙) 한 가지, 나물 한 접시, 송편 한 접시면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며 “제례의 원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부담 없이 차리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 | 추석 차례상에 마카롱과 샤인머스캣, 멜론이 올라가 있는 모습(사진=X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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