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추석 밥상에 담긴 음식처럼, 대통령의 밥상에도 메시지가 깃듭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비빔밥부터 대게까지, 메뉴마다 ‘통합·서민·외교’의 의미를 담아내며 식사 정치를 펼쳐왔습니다. 밥상은 허기를 달래는 자리를 넘어 소통과 화합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밥상은 곧 소통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 기념 오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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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밥을 먹으며 어색함을 풀기도 하고,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기도 합니다. 직장인들도 점심을 통해 목적 있는 대화를 나누고, 윗사람은 부하직원과 한솥밥을 먹으며 오해를 풀기도 합니다. 밥은 그래서 소통입니다.
역대 대통령들 또한 식사 정치를 통해 국정을 운영했습니다. 여야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협치를 논하거나 세를 과시했습니다. 다만 때로는 초호화 메뉴로 국민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을 거쳐 집권한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식사 정치를 펼쳐왔을까요?
첫 밥상은 ‘비빔밥’ 이 대통령은 6월 4일 취임 선서 후 첫 일정으로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들을 초청해 오찬을 했습니다. 메뉴는 비빔밥이었습니다. 각 정당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한데 어우러져 통합하자는 상징이 담겼습니다. 이 대통령은 “양보할 건 양보하고 타협할 건 타협해 모두가 함께 동의하는 정책으로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겠다”며 “자주 만나 의제와 상관없이 대화하자”고 당부했습니다.
서민과 함께한 ‘오겹살과 소맥’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11일 저녁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직원들과 외식 행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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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의 없는 서민적 행보도 눈에 띕니다. 지난 7월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메뉴는 오겹살과 소주였습니다. 과로로 쓰러진 공무원들을 위로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이 대통령은 직접 ‘소맥’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건네며 “헌신해 온 여러분과 밥 한 끼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공직자의 1시간은 5200만 국민의 1시간”이라며 사명감을 강조했습니다.
외교에도 스며든 ‘봉화 특산물’
 | |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빈 방문한 또 럼 베트남 당 서기장 부부를 맞이하며 악수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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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정상과 만날 때는 역사성을 담은 메뉴로 친근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8월 11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의 만찬에서는 경북 봉화 특산물이 식탁에 올랐습니다. 고려 말 한반도로 이주한 베트남 왕자의 후손이 봉화에 정착한 역사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봉화산 허브를 곁들인 ‘삼색 밀쌈 말이’는 베트남의 쌈 문화도 반영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은 베트남의 최적의 파트너”라며 베트남어로 ‘건강을 기원한다’는 건배사 ‘쭉슥회’를 외쳤습니다.
APEC 알린 ‘황남빵과 대몽재’
이 대통령은 우리 문화를 알리는 식사도 중시했습니다. 8월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교사절 만찬에서 경주 특산물인 황남빵과 경주 최부잣집 가양주 ‘대몽재’를 내놓았습니다.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알리려는 의도였습니다.
일본 총리에 ‘대게 냉채’ 대접
 | |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9월 30일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부산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 입장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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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의 식탁도 있었습니다. 9월 30일 부산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고향 돗토리를 고려한 메뉴가 나왔습니다. 돗토리 명물 대게와 가평 잣을 곁들인 냉채, 돗토리 전통 두부 치쿠와를 부산 어묵튀김으로 변주한 요리였습니다.
이는 지난 8월 도쿄 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이 안동 찜닭으로 대접한 것에 대한 화답이기도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상호 배려의 마음을 식탁에 담아냈습니다.
비빔밥에서 대게까지, 이재명 대통령의 식사 정치에는 ‘통합·서민·외교’가 함께 녹아 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 창구이자 외교무대의 상징으로 활용되는 밥상머리 정치가 앞으로 어떤 맛을 낼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