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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후보의 선거 키워드를 꼽으라면 다 함께 잘 사는 ‘국민성장’, ‘준비된 대통령’, ‘적폐 청산’이 아닌가 한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조차 ‘따뜻한 보수’를 외치며 대기업 법인세 인상,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을 통한 복지 확대를 이야기하니, 법인세 축소를 외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빼면 경제정책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더 눈에 띄는 게 그의 ‘적폐 청산’ 발언이다.
문 후보는 지난 13일 민주당 정강정책 연설을 통해 “국민의 통합된 힘만이 적폐 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 해낼 수 있다”며 “제가 앞장서 대통합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그는 “적폐 청산은 국민 편 가르기가 아닌, 통합이자 미래”라고 했다.
적폐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쌓여 있는 부패나 비리를 말한다. 지난 겨울 1천만 명 넘는 국민이 참가한 촛불 민심이 정의로운 대한민국,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의지였기에 공감 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문 후보의 ‘적폐 청산’은 ‘사회적 갈등만 부추긴다’는 평가도 여전하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선 무지에 따른 비현실적인 공약들을 남발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후보를 둘러싼 당내 전문가 의견이 제각각이다 보니 외부에 표출되는 메시지도 우왕좌왕이어서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도 퇴색한다.
대표적인 게 통신 공약이다. 문 후보는 “가계통신비를 낮추기 위해 월 1만1000원이나 하는 통신 기본료를 폐지하고, 5G 통신망을 정부가 직접 투자해서 민간이 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공약들은 현실성이 없다. 통신 기본료 폐지 시 이통3사는 수조원의 적자로 돌아서기 때문에 요금제 개선으로 회피하려 할 것이고, 최대 50조가 드는 5G통신망을 가칭 대한민국통신(주)가 직접 깔려면 오히려 국민 혈세가 낭비된다.
통신으로 영화 보고 은행가고 음악 듣는 일이 익숙해지면서 가계에 부담이 되는 통신비를 낮추려는 노력은 새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시장이 아닌 정부가 나서 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요금제를 손보고, 네트워크를 직접 까는 방식은 과도한 ‘관치’로 보인다. 이는 문 후보가 대한민국 성장의 열쇠라고 언급했던 4차 산업혁명과도 맞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이 성공하려면 정부는 직접 모든 걸 다 하려는 게 아니라 민간과 기업이 앞장서고 뒤에서 밀어주는 방식이 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간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한 정부의 권한 축소가 이뤄지지 않은 게 아쉬웠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는 또다른 의미의 강한 정부를 내세운다. 외교나 민생을 포함한 사회문화 정책에선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이 중요한 덕목이나, 민간의 창의성이 성장엔진인 산업분야는 다르다.
인간과 인공지능(AI)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정부는 전문성으로 무장한, 크기보다는 소통이 활발한 혁신 정부여야 한다.
정부가 신경 써야 할 일이라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같은 불공정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공정거래 강화 정도다.
그런 측면에서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라는 ICT 생태계에서 특정 산업군인 민간의 네트워크(통신) 경쟁력을 깡그리 무시하는 듯해 보이는 문재인 후보의 발언은 ‘나 말고는 모두 적’이라는 폐쇄성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민주당 정책본부와도 조율되지 않은 통신비나 5G 같은 공약들이 여과 없이 전달되는 것은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당당한 이미지와도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