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쿠팡을 창업한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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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당초 쿠팡을 ‘총수 없는 기업집단’으로 지정하려 했던 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석 의장을 동일인(총수)로 지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모양이다. 김 의장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김 의장을 동일인에서 제외하는 건 특혜라는 비난이 거세진 때문이다.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를 총수로 지정해 지정해 규제하는 제도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다. 과거 재벌의 가족간 선단식 경영을 막기 위해 1987년에 만든 제도다. 동일인 중심으로 혈족 6촌, 인척 4촌까지 정부 감시망에 두고 일감몰아주기 등 사익편취를 감시한다.
수십년간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가 그대로 유지된 배경엔 재벌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규제를 만들면 이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빠져나갔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신설하자 여러 기업들이 해당 회사에 대한 총수 지분율을 29.99%로 떨어트려 ‘30% 룰’ 규제에서 빠져 나가는 꼼수를 쓴 게 대표적이다.
악순환이다. 이처럼 기존 대기업집단이 총수일가 사익편취를 통해 자녀승계 등을 반복할 것이라는 불신은 다른 지배구조와 경영방식을 택한 IT기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IT기업에 대한 재벌 규제는 실효성은 크지 않다. 특히 쿠팡은 우리나라도 아닌 미국 상장사다. 만약 쿠팡이 김범석 의장 개인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 김 의장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다면 공정위에 앞서 주주들이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소송을 벌일 것이다. 김 의장이 아무리 차등의결권을 통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더라도 소프트뱅크, 그린옥스캐피털 등 다른 주주들이 가만히 두고 볼리가 없다.
쿠팡, 네이버 등 IT기업에 대한 규제 초점은 독과점 해소, 플랫폼 노동자 보호 등으로 옮겨가야 한다. 소비자와 사업자를 연결해 ‘양면시장’에서 사업하는 플랫폼은 과거와 달리 규제를 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환부만 정확하게 도려낼 수 있는 정교한 칼이 필요하다. 공정위가 낡고 해묵은 재벌규제 논란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