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로 시신 수습하며 울분”…1만여건에 담긴 아픈 역사

'진실을 밝히다: 제주 4·3아카이브' 유네스코 제출
도서·비디오·오디오 등 1만3976건
2025년 이사회서 최종 등재여부 결정
  • 등록 2023-12-07 오전 5:30:00

    수정 2023-12-07 오전 5:30:00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사건이 나던 날 밤, 다랑쉬굴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땅속에 코를 파묻고 죽어있었어요. 눈과 코, 귀에서 피가 나 형편없었죠. 땅을 얼마나 팠던지 손톱이 없는 시신도 있었어요. 널려있는 시신을 수습해 남쪽에는 하도 사람들을, 종달리 사람들은 북쪽에 차례로 눕혔습니다.”

1948년 12월 18일 겨울. 다랑쉬굴에서 제주4·3사건 희생자 유골을 직접 수습했다는 채정옥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이날 다랑쉬굴에선 토벌작전을 이유로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집단학살이 자행됐다. 마을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들과 산으로 임시 피신하거나 경찰 눈을 피해 마을 곳곳에 숨어 있어야만 했다. 1948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넉 달 동안 계속된 ‘초토화 작전’으로 제주섬은 그야말로 불바다가 됐다.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제주도마을주민사진(사진=문화재청).
제주4·3사건의 역사를 담은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을 향한 도전에 나섰다. 문화재청은 최근 ‘진실을 밝히다: 제주4·3아카이브(Revealing Truth : Jeju 4·3 Archives)’에 대한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 본부에 제출했다. 1948년 4월 3일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발발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진술과 진상규명, 화해의 과정을 담은 기록물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인권의 중요성을 알리고 화해와 상생 정신을 통해 아픈 과거사를 해결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최종 등재 여부는 2025년 유네스코 이사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등재를 신청한 기록물에는 제주4·3사건의 발단이 된 사건도 포함됐다. 1947년 3월 1일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한 어린아이가 치여 다쳤다. 기마경찰이 다친 아이를 그대로 두고 지나가자 군중들은 돌을 던지며 항의하기 시작했고, 경찰은 이런 군중을 향해 총을 쐈다. 6명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은 이후 4·3사건의 기폭제가 됐다.

제주4.3사건 수형인명부(사진=문화재청).
1948년 4월 3일, 미국은 제주도민의 민관 총파업이 발생하자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그 해 11월 17일 제주도 섬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중산간 지대뿐 아니라 해안마을로 내려간 주민들까지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복수와 증오심은 격한 충돌로 이어졌고 민간인들의 희생은 극에 달했다.

7년 7개월간 지속되면서 주민 3만 명이 희생된 이 사건은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그나마 목숨을 건진 생존자와 가족들은 ‘빨갱이’로 낙인 찍혀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최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상 규명 운동과 함께 해결 과정을 밟고 있다.

‘제주4.3기록물’은 이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총 1만 3976건으로 도서 19건, 엽서 25건, 소책자 20건, 비문 1건, 비디오 538건, 오디오 94건 등이다. 군법회의 수형인 기록과 수형인 등 유족의 증언, 도의회 피해신고서, 위원회 채록 영상 등이 기록물에 포함됐다.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는 “기록물은 ‘당시의 기록’과 ‘주민들이 어떻게 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기록’ 두 가지로 나뉜다”며 “여전히 화해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아픈 역사”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적인 가치가 있는 기록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1997년부터 2년마다 등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세계 84개 국가에서 496건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시작으로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5·18민주화운동기록물 등 총 18건이 등재돼 있다.

사건희생자 및 유족 심의결정서(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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