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 경제 성장의 영향을 받고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환율은 초단기로는 상대국 간 금리 차이에 따라 변동하지만 중장기로는 (잠재)성장률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 경기 위축으로 성장률이 하락하면 정책 조율에 따라 회복이 가능하지만 국가백년지대계나 다름없는 잠재성장률은 무뎌지기 시작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지금까지 중화학공업, 정보기술산업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하며 성장잠재력을 확충해 왔으나 앞으로는 획기적 교육개혁과 노동개혁 없이는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이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향후 대미 원화 환율의 ‘뉴 노멀’ 수준을 예단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기축통화 달러화의 주요 선진 6개국 통화 대비 평균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2023년 1월 31일 101.22에서 2025년 1월 31일 108.49로 2년간 7.2% 올랐다. 선진국 간의 비교 경제력 변화를 표상하는 달러 인덱스가 이처럼 상승한 원인은 세계 경제질서 변화가 예고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번영을 이끌었던 글로벌리즘이 쇠퇴하고 열강의 자국 우선주의로 다툼이 재현될 가능성이 커지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동 기간 중 대미 원화 환율은 1328원에서 1459원으로 9.8% 올랐다. 달러 인덱스 상승보다 원화의 대미 가치가 더욱 하락했음을 고려할 때 원화 약세는 대내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단기간에 문제 해결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2024년 말 현재 우리나라 외환 보유고는 4156억 달러로 평소보다 줄어들었으나 세계 9위권, 거주자의 순대외금융자산은 지난 3분기 말 9778억 달러로 늘어나 8위로 상위권이지만 대외의존도가 유달리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심하지 못한다. 외화보유고가 줄어드는 가운데 순대외금융자산이 증가한 원인은 무엇보다도 내외국인들이 한국경제의 미래 성장잠재력을 밝지 않게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투자수익을 더 많이 거두기 위해 국내투자보다 해외투자를 선호하는 결과라고 풀이할 수 있다.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현상은 상속과 증여세를 비롯한 힘겨운 과세를 피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짐작된다.
미국 혼자서 경제적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트럼프 충격(Trumph shock)은 공존공생이 아니라 강자만 살아남는 약육강식 논리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어떤 방향으로 증폭돼 갈지 알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한 이머징 국가들은 세계 경제질서 재편에 따른 영향으로 통화가치가 급변할 수밖에 없어 이들 국가의 독자적 경제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전 세계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트려 환율도 미국우선주의(Make America Great Again·MAGA) 향방에 따라 급변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 악영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고환율로 물가 불안이 더해지며 특히 서민 경제, 중소 상공인들의 고통이 크지만 미봉책으로 환율 안정을 기하려고 소중한 외화를 낭비하다가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다. 섣부른 외환시장 개입은 대외금융자산은 몰라도 외화 준비자산을 허공에 날릴 우려가 크니 조심해야 한다. 예컨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함몰돼 “한국경제 펀더먼털이 괜찮다”는 헛소리를 되뇌며 대미 원화 환율을 800원대 초중반에서 억누르려다 보유 외화가 바닥이 나자, 환율이 밟았던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1960원까지 치솟으며 위기로 연결된 재앙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원자재와 생활물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환율은 거시경제 상황에 비해 높아도 문제 낮아도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수년래 대미 원화 환율 급상승은 금리 차이가 아니라 미국경제 대비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 하락이 근본 원인임을 인식해야 무리수를 일으키지 않고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갈 수 있다. 중장기 환율 안정을 위한 최선의 방책은 시장 관련 정보의 투명성을 확보해 가계·기업·정부 모두 상황 판단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눈앞의 어려움을 피하지 말고 멀리 봐야 대가를 조그맣게 치르고 외환시장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