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아빠진 쇳덩이·녹내린 캔버스, 예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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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정현 개인전
파쇄공 등 조각 7점·드로잉 70점 전시
학고재갤러리서 11월9일까지
  • 등록 2014-10-24 오전 6:41:00

    수정 2014-10-24 오전 6:41:00

제철소에서 쓰이던 파쇄공이 조각가 정현에 의해 ‘무제’라는 이름의 조형작품이 됐다. 갤러리 외부에 놓인 파쇄공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정현 작가(사진=학고재갤러리).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대형 크레인에 매달려 지상에서 25m 높이의 허공으로 올라갔다가 수직으로 낙하하기만 반복한 쇳덩어리. 그 세월이 몇천일이다. 16t에 달했던 쇳덩어리는 그간 무게가 절반으로 줄었다. 이름은 파쇄공. 쇠찌꺼기를 용광로에 넣을 크기로 깨트리는 용도로 사용했다.

재료의 물성을 강조해온 조각가 정현(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이 다음달 9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17번째 개인전을 연다. 이번 개인전에서 처음 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포항과 광양 제철소에서 파쇄공으로 쓰이던 쇳덩어리 3개다. 정 작가는 그저 파쇄공을 옮겨와 맥락을 알려줄 뿐 인위적인 조형미를 더하지 않았다. 파쇄공이 겪은 시련이 아름답다고 여겨서다. 정 작가는 파쇄공 자체를 “산업현장의 힘의 축적”이자 “질곡의 현대사가 묻어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작업에 쓸 고철을 구하기 위해 제철소에 갔던 작가는 고철이 쌓인 야적장에서 파쇄공이 낙하해 쇠를 부수는 광경을 봤다. 육중한 파쇄공도 세월이 흐르면 닳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아득해졌다. 파쇄공이 닳는 과정에 질곡의 현대사가 묻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굳이 용접이나 분해가 필요치 않았다. 그 자체가 조형예술품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제철소에서 쓰이던 파쇄공이 조각가 정현에 의해 ‘무제’(110x126x126㎝)라는 이름의 조형작품이 됐다(사진=학고재갤러리).
파쇄공 3점이 일상의 구조물에서 남다른 의미를 구별해낸 선별자로서 작가의 역량을 나타냈다면 신작 드로잉 70여점은 창조자로서의 개성을 감지할 수 있게 한다. 정 작가는 그간 철도의 침목, 석탄, 아스팔트 콘크리트, 잡석 등 버려지고 낡은 재료들에 주목해왔다. 드로잉도 마찬가지다. 연필이 아닌 석탄 찌꺼기로 패기처분하기 곤란한 콜타르를 활용해 마치 잎새를 떨군 가을나무같은 형상을 그렸다. 철을 캔버스에 묻히고 이를 긁어낸 뒤 물을 뿌리거나 비를 맞게 한 후 녹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 모습도 드로잉이 됐다. .

파쇄공과 드로잉 외에도 철근을 이용한 인체 형태 조각도 전시된다. 학고재갤러리는 “정현 표 예술의 역사를 간결하게 보여주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02-720-1524.

철판에 녹 드로잉으로 그린 ‘무제’(사진=학고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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