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같은 판매 대금 입금 지연의 구조를 기술적으로 바꿀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일반적으로 원화나 달러 같은 법정통화와 1대 1로 연동해 발행하는 디지털 자산인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원장 기술을 통해 거래와 정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결제가 이뤄지는 즉시 판매자의 디지털 지갑으로 자금이 이전된다. 금융기관 간의 전산 이체 과정이나 중개 기관의 정산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정산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결제’가 가능하다.
특히 핀테크 기업은 스테이블코인을 기반으로 산업 특화형 결제 솔루션을 구현하는 데 강점을 지닌다. 플랫폼 경제, 디지털 콘텐츠 유통, 소액 반복 결제, 정기 구독 서비스 등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자동 결제와 실시간 분배는 이미 활발하게 실험되고 있다.
글로벌 주요국들은 스테이블코인의 기술적 가능성을 제도화하기 위한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에서는 서클(Circle)이 발행한 USDC가 디지털 콘텐츠 결제, 탈중앙화 금융(DeFi), 플랫폼 기반 급여 정산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 범위를 확장하고 있으며 페이팔(PayPal) 역시 PYUSD를 통해 실시간 결제 서비스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민간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하기 위한 ‘지니어스법’(GENIUS Act)과 ‘스테이블법’(STABLE Act) 등의 입법 논의를 병행하고 있다. 영국은 금융감독청(FCA)과 영란은행(BoE)이 각각 스테이블코인 관련 보고서를 통해 규제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싱가포르는 핀테크 기업이 정식 인가를 받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체계를 이미 마련했으며 홍콩은 지난해 12월 관련 법안을 제출하고 오는 5월 승인 절차를 거쳐 연내 첫 규제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제는 ‘누가 발행하느냐’보다 ‘어떻게 설계하고 실제로 어떤 효용을 제공하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 준비금 구성, 외부 감사, 소비자 보호 등 기본적 요건을 충족한다면 은행이든 핀테크 기업이든 차별 없이 발행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금융 시스템 내 다양성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발행 권한을 독점 구조에서 분산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정산 구조의 단점을 제거하고 실시간 자금 회전이 가능한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기술적 해법이다. 핀테크 기업의 기술과 서비스 역량이 실질적인 결제 혁신으로 구현되도록 제도는 가능성을 제한하기보다는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