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스테이블코인과 결제 혁신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한패스 대표
  • 등록 2025-04-23 오전 5:00:00

    수정 2025-04-23 오전 5:00:00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한패스 대표] 소상공인에게 ‘판매 대금이 언제 입금되는가’는 단순한 결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고 결제가 이뤄져도 그 대금은 다음 날 또는 그 이후에야 입금된다. 하루 매출로 재고를 보충하고 인건비를 지급해야 하는 자영업자에게 이러한 시간차는 운영 리스크로 직결된다. 주말이나 공휴일이 끼면 더욱 심각해진다.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한패스 대표(사진=이데일리 DB)
결제의 디지털화는 빠르게 진화했지만 정산 시스템은 여전히 하루 이상의 시차가 있다. 예를 들어 체크카드, 직불 계좌, 선불지급수단 모두 결제 시점에 소비자로부터 실시간으로 출금되지만 판매자에게 입금되기까지는 구조적인 지연이 발생한다. 이는 해당 결제 수단들이 모두 은행 계좌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금융결제원의 소액결제시스템을 통해 익영업일에야 한국은행 당좌예치금 계정을 통한 은행 간 이체가 완료되기 때문이다. ‘즉시 결제’가 이뤄지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익영업일 정산’이 고착돼 있다.

이 같은 판매 대금 입금 지연의 구조를 기술적으로 바꿀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일반적으로 원화나 달러 같은 법정통화와 1대 1로 연동해 발행하는 디지털 자산인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원장 기술을 통해 거래와 정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결제가 이뤄지는 즉시 판매자의 디지털 지갑으로 자금이 이전된다. 금융기관 간의 전산 이체 과정이나 중개 기관의 정산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정산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결제’가 가능하다.

특히 핀테크 기업은 스테이블코인을 기반으로 산업 특화형 결제 솔루션을 구현하는 데 강점을 지닌다. 플랫폼 경제, 디지털 콘텐츠 유통, 소액 반복 결제, 정기 구독 서비스 등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자동 결제와 실시간 분배는 이미 활발하게 실험되고 있다.

이는 유동성에 민감한 소상공인, 자영업자, 플랫폼 기반 노동자, 창작자 등에게 각별히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신용 기반이 아닌 현금 흐름에 의존하는 소규모 사업자에게 당일 매출이 해당일의 운영 자금으로 연결된다는 점은 경영 안정성과 직결된다. 항상 자금 부족의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 환경에서는 기술 기반의 정산 혁신이 구조적 복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가치도 충분하다.

글로벌 주요국들은 스테이블코인의 기술적 가능성을 제도화하기 위한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에서는 서클(Circle)이 발행한 USDC가 디지털 콘텐츠 결제, 탈중앙화 금융(DeFi), 플랫폼 기반 급여 정산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 범위를 확장하고 있으며 페이팔(PayPal) 역시 PYUSD를 통해 실시간 결제 서비스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민간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하기 위한 ‘지니어스법’(GENIUS Act)과 ‘스테이블법’(STABLE Act) 등의 입법 논의를 병행하고 있다. 영국은 금융감독청(FCA)과 영란은행(BoE)이 각각 스테이블코인 관련 보고서를 통해 규제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싱가포르는 핀테크 기업이 정식 인가를 받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체계를 이미 마련했으며 홍콩은 지난해 12월 관련 법안을 제출하고 오는 5월 승인 절차를 거쳐 연내 첫 규제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할 예정이다.

국내에도 스테이블코인 관련 기술을 이미 갖추고 있는 핀테크 기업들이 여럿 있다. 이들은 해외 송금이나 정산 등 실물 금융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치고 제도화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규제가 아직 마련되지 않아 기술과 수요는 여전히 제도 밖에 머물러 있다. 실물경제와 연결되는 실질적 결제 인프라가 빠르게 구현될 수 있도록 제도화가 시급하다.

그리고 이제는 ‘누가 발행하느냐’보다 ‘어떻게 설계하고 실제로 어떤 효용을 제공하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 준비금 구성, 외부 감사, 소비자 보호 등 기본적 요건을 충족한다면 은행이든 핀테크 기업이든 차별 없이 발행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금융 시스템 내 다양성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발행 권한을 독점 구조에서 분산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정산 구조의 단점을 제거하고 실시간 자금 회전이 가능한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기술적 해법이다. 핀테크 기업의 기술과 서비스 역량이 실질적인 결제 혁신으로 구현되도록 제도는 가능성을 제한하기보다는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 것이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MICE 최신정보를 한눈에 TheBeLT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손흥민 "레전드"..인정했다
  • 노출금지했는데
  • 아이들 '변신'
  • 시원한 스윙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