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대선 경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다시금 모병제가 거론되고 있다. 물꼬를 튼 이는 홍준표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다. “모병제를 대폭 확대해 징병제의 부담을 줄이자”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 때 복무기간 축소(10개월)와 선택적 모병제를 내놓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선택적 모병제는 병역자원 가운데 지원자에 한해 장기 복무(36개월)를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다들 모병제를 실시하면 복무 부담도 줄고 병력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이러한 공약이 젊은 남성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포퓰리즘이라는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거 경쟁의 특성상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을 너무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병역제도의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거론되는 모병제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우선, 현실적으로 모병제를 실시할 경우 병력 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실현 가능성이 없다. 무엇보다 3~4년간의 경력 단절을 감수하고 군에 지원할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비슷한 제도에서 그러한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단기부사관 제도로 미필 지원자 가운데 선발해 4년 복무하게 하는 것이다. 지원율이 형편없이 낮다. 2023년 부사관 충원율은 82.9%에 그쳤다. 작년 1분기에는 모집 정원의 47%만 겨우 뽑았다. 연간 1만1000명을 모집하는 부사관이 이 정도다. 일반병 대상 모병은 더 힘들 것이다.
인구 대비 병역 자원 확보에서도 근본적 한계가 있다. 미국의 경우 인구 대비 군인(131만 명) 비율은 1000명당 3.8명이다. 현역과 예비역을 포함한 수치다. 우리의 경우 현역(50만 명)만 계산할 경우 1000명당 9.7명이다. 급여 등 미국의 기준이 적용된다고 했을 때 전면적인 모병제를 통해 충원할 수 있는 병력은 장교, 부사관 포함해서 19만 6000여 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국방비를 미국 수준으로 대폭 증액한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결코 필요한 병력을 충원할 수 없는 제도다.
더 중요한 것은 모병제가 ‘바람직한’ 정책이냐는 것이다. 여기서 쟁점은 군 복무를 담당하는 이들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1973년부터 전원 지원제(All-Volunteer Force, AVF)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을 보자. 세계 최강의 군대로 평가받고 있지만 전쟁을 결정하는 집단과 피 흘리며 싸우는 사람이 다르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군인들은 대부분 중산층 출신이라고 하지만 최고 엘리트 계층에서 군대 가는 경우는 드물다. 2024년 보도에 의하면 군인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민간 가구에 비해 24%나 낮았다. 그나마 필요 인원을 채우지 못해 미국 시민권을 주고서라도 외국인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에 모병제가 시행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거나 학력이 낮은 이들로 채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부자 집안이나 좋은 대학 다니는 이들이 군대에 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 사회적 불평등이 병역의 차별로 발현될 것이다. 국가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올바른 국가라면 공직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부터 우선적으로 병역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국가를 이끌 지도자라면 말할 나위가 없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신의 비용으로 무장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전장에 나갈 수 있을 때 시민의 자격이 주어졌다. 로마의 지도자들은 국가 위기 시 앞장서 전선으로 달려갔다. 칸나이 전투에서 죽은 원로원 의원만 80명이나 됐다. 유럽 국가들이 근대 세계를 주도했던 것도 오지의 전선에서 부대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역사에서 군역은 힘없는 백성의 몫이었다. 6.25전쟁 때도 ‘빽’없는 사람들이 군대에 끌려갔다. 징병제 상황에서도 많은 엘리트들은 군 복무를 회피했다. 모병제는 이런 나쁜 전통을 부활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병제는 실현 가능성도 없고 바람직하지 않은 공약이다. 정말 국민이 원하는 공약이 필요하다면 지금부터라도 정치를 하려고 하거나 공직자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 병역 이행을 필수 자격으로 삼는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 한다. 젊어서부터 헌법적 의무(병역)를 이행한 이들에게 공직자의 길을 허용하는 것이 헌정 질서에 부합하고 국민도 환영할 일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