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벌써 1년…휴전 예측 불가능 '안갯속'

[전문가 진단]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인질 협상 관심없는 네타냐후…장기전 태세
중동 지역 넘어 국제 이슈…美 대선 영향
이스라엘 공작 과시…한반도도 대비해야
  • 등록 2024-10-07 오전 6:00:00

    수정 2024-10-07 오후 1:44:59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사진=이데일리 DB)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째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장기간 군사 작전을 이어왔으며, 최근엔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로 창끝을 돌려 전쟁의 주 무대가 가자지구에서 레바논으로 옮겨가고 있는 모습이다. 게다가 ‘저항의 축’을 이끄는 이란이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폭사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을 겨냥한 대규모 미사일 공격에 나서고 이스라엘도 재보복을 다짐하면서 중동지역의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중동판 9·11테러’…지역 충돌 넘어 국제 문제로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팔 전쟁 1년을 맞아 지난 4일 이데일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하마스의 기습 공격은 ‘중동판 9·11테러’로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은 단순한 지역적 충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문제로 확대됐고, 내달 치러질 미국 대선에도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 이슈로 자리잡았다”고 평가했다.

국제사회에 미친 충격파 중 하나는 신(新) 냉전 구도를 가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인 교수는 “글로벌 사우스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중심에 놓고 자신들의 이슈로 만드는 게 눈에 띈다”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서구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한 반(反)서구 진영이 대립하면서 중동 갈등은 새로운 차원의 국제적 이슈로 변모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전쟁을 확대하며, 이란을 최대한 압박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인 교수는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1년 이상 전쟁을 이어온 경험이 없지만, 중동사에서 하마스 기습 공격이 처음 있는 일이라 최장기전으로 그 긴장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짧은 시간에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경험한 적이 처음이라 (하마스에) 보복·응징에 나선 데 이어 이란과의 갈등을 포함한 지역적 전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장기전에 대한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평가된다. 가자지구에서 교전 중인 군사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가 아닌 국제사회에서 휴전 협상을 지휘하던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폭살하면서다. 사실상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음을 국제사회에 선언한 셈이다. 인 교수는 “앞으로 휴전과 가자지구 통치에 관련해서는 어떤 예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갯속”이라고 말했다.

2022년 6월 23일 헤즈볼라의 알마나르 TV가 공개한 사진으로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수장인 하산 나스랄라(오른쪽)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수장인 이스마일 하니예가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만난 후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AFP)
가자 인도주의 위기·이스라엘 인질 협상 요원

무력 충돌의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에 향했다. ‘지구 상 가장 큰 감옥’이라 불리는 가자지구에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은 최소 4만1000여명이다. 인 교수는 “가자지구 365㎢ 규모 공간에서 220만 주민이 사는 가운데 공습과 지상전까지 이뤄지다 보니 안전지대로 도피하면서 식량과 의료품 공급이 제때 안 되고 있다”며 “국제구호기관에서 기아사태를 우려하는 이야기를 흘려들을 순 없는 상황으로 인도적 위기인 것은 분명하며 이 전쟁의 또 다른 큰 과제”라고 짚었다.

인질도 문제다. 작년 10월 7일 피습으로 이스라엘인 1205명이 사망했고, 현재 납치돼 억류된 인질은 64명이다. 인 교수는 “피랍된 자국민 인질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가 돼야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연정하는 극우 강경파 3명의 각료(법무·재무·국가안보장관) 뜻대로 애석하게 인질 협상을 반대하며 강공을 주장하고 있다”며 “인질 문제가 정부의 최우선 순위가 아닌 것 같다”고 비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미스터 안보’로 불릴 만큼 강력한 국방을 내세우며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로 권좌를 지켜왔다. 2011년 하마스에 5년간 피랍된 이스라엘 병사 1명을 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수감자 1027명을 석방하는 결단을 내린 전략가였지만, 하마스의 기습을 막지 못한 이번 전쟁 이후엔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인 교수는 “내각 최고책임자로서 극우 각료에 휘둘리면 안 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다수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전쟁이 끝난 후엔 정부의 우선순위 설정이 제대로 됐는지 판단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전쟁 이후 네타냐후 총리는 정치적 실각 위기뿐 아니라 총리에 복귀하며 중단된 기존 부패 피소건이 되살아나며 형사처벌 위기도 맞게 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조 바이든(오른쪽)미국 대통령은 2023년 10월 18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을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을 하고 있다.(사진=로이터)
‘그림자 전쟁’ 끝나나…美 중재 역할 한계

향후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도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란은 지난 40여 년간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앞세워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대리전, 그림자 전쟁을 전개했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던 과거와 달리 이번 전쟁에선 이란은 이스라엘에 지난 4월 300기 미사일·드론 공격, 지난 1일엔 180여기 미사일 공격 등 두 차례 직접 나섰다. 인 교수는 “개혁파 이란 대통령은 서방의 오랜 경제 제재로 피폐해진 경제 회복을 위한 대외 관계 개선에 나선 참이고, 이란이 이스라엘의 도발에도 인내하고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주고 싶어할 것”이라며 “그러나 국가 위신이란 게 있는데 (그림자 전쟁을 수행하는) 두 세력의 수장이 죽은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반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상중재자로서 미국의 역할은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는 적어도 중동 문제에서 공약과 달리 이룬 게 없다”며 “이·팔 문제를 미국 유권자들이 반유대주의, 팔레스타인, 소수자 인권 문제 등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면 대선에도 일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미국 내에서 이스라엘을 더는 우방으로 여기지 않을 시점이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 교수는 “1200여명 이스라엘인이 죽어 보복하는 게 정의라고 하지만, 4만여명이 넘는 가자 주민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보복을 이어가는 게 인권과 생명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문제를 제기할 만하다”며 “장년층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 Z세대는 이젠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이미지인 이스라엘에 계속 미국의 자원을 쓰는 게 맞는지에 대해 민낯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스라엘 정보전 과시…“한반도도 대비해야”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을 치르면서 국제사회에 공작 능력을 과시했다. 지난 7월 이란 본토에서 대통령 취임 축하 잔치 분위기 속에서 하마스 수장인 하니예와 수행원만 정밀하게 타격했다. 지난달 17일엔 무선호출기(삐삐) 폭발로 헤즈볼라 통신체계를 초토화했고, 지난달 27일 헤즈볼라 수장인 하산 나스랄라 사무총장의 숨통까지 끊었다. 이 공습으로 압바스 닐포루샨 이란혁명수비대(IRGC) 작전부사령관도 함께 사망했다. 인 교수는 ‘이스라엘의 정보전의 승리’라는 평가에 “그런면에서 완벽했다”며 “실행 타당성과 국가 이익에 맞느냐를 떠나 무선호출기 테러는 오래 품을 들인 공작인데 어쨌든 작동했으니 이스라엘의 정보 공작 인프라가 놀라운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에 분쟁 상태인 한반도에서 유사한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인 교수는 “워낙 임팩트 있는 공격이었기에 역설적으로 북한이 이스라엘을 따라 하고 싶은 의지도 생기지 않을까”라며 “핵전쟁, 전략무기 전쟁, 재래식 전면전쟁에 이어 이러한 비대칭적 테러전까지 모두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음을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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