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소액주주 보호하는 더 효율적인 방패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 등록 2025-02-19 오전 5:00:00

    수정 2025-02-19 오전 5:00:00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전 한국증권학회 회장] 한국 자본시장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도입 논의가 주목받고 있다. 민주당이 제시한 상법 개정안은 소액주주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주주환원 확대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표로 한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안고 있었고 그 원인 중 하나로 기업들의 주주친화 정책 부족과 지배구조 문제가 지적돼 왔다는 점에서 개정안의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 개정안이 과연 소액주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행 제도에서 소액주주가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는 매우 어렵다. 법적 절차의 복잡성과 과도한 비용 부담으로 인해 정당한 권리 행사마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증권분야의 제한적 집단소송 외에는 소액주주들이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단도 부족하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의 손해 회복이 목적이라 소액주주의 직접적 보상 수단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소송 제기를 위한 지분 요건도 높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도입되더라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도의 실익은 사모펀드나 행동주의 펀드 같은 기관투자자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충분한 자금력과 법적 자문을 바탕으로 경영진을 압박해 단기적인 주가 상승을 이끌어낸 후 빠르게 차익을 실현하고 떠날 수 있다.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자산 매각 등 단기적인 주주이익을 극대화하는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이들이 떠난 후에는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금이 소진돼 기업이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보다는 투기적 자본의 활동을 더욱 활성화할 우려가 크다. 주주이익을 강조하는 정책이 오히려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저해하고 장기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주주의 다양성도 심각한 문제다. 장기투자자와 단기투자자, 배당 선호 주주와 성장 선호 주주, 위험회피적 주주와 위험선호적 주주 등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주주들이 존재한다. 이사들이 이 모든 주주의 이익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느 한쪽의 이익을 추구하면 다른 쪽으로부터 충실의무 위반 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 결국, 이사들은 소송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아무런 의사결정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경영진은 소송 위험을 피하기 위해 혁신적 투자나 신사업 진출을 꺼리게 될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개발 투자가 줄어들고 보수적 경영이 만연해진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주주 모두에게 손해가 될 것이다.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서는 이사 충실의무 도입보다 실효성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거래소나 금융투자협회 등 자율규제기구가 소송비용 지원 기금을 조성하고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소송 지원의 범위를 이사들의 결정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가 발생한 경우로 한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사들의 부당한 자산 매각이나 계열사 간 거래로 인해 주주가치가 훼손된 경우에만 소송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남소를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도입은 소액주주 보호라는 명분과 달리 사모펀드 등 기관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서는 이사에게 충실의무를 부과하는 것보다 집단소송제를 확대하고 소송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소송비용 지원 기금이 운영된다면 소액주주들도 부담 없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기업의 경영진도 단기적인 압박보다는 장기적인 경영 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율규제 체계는 소액주주 보호와 기업가치 제고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업들은 단기적 압박에서 벗어나 장기적 성장 전략을 추구할 수 있고 소액주주들은 실질적인 권리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법적 규제 강화보다 시장 참여자들의 자발적 노력을 통한 해결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도 더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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