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상속세 개편 논의가 뜨겁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상속세 공제 확대를 주장하자 국민의힘 지도부가 ‘끝장 토론’ 제의로 맞받은 데 이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 잠룡들도 가세, 판이 급속도로 커졌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중산층 표심을 의식해 펼쳐진 신경전이다. 민주당은 정부가 상속세 공제 한도를 늘리고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는 법안을 지난해 제출했지만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었다.
이 대표는 현행 ‘일괄 공제 5억원, 배우자 공제 5억원’을 ‘일괄 공제 8억원, 배우자 공제 10억원’으로 높이겠다고 했다. 18억원짜리 집을 갖고 있어도 상속세 때문에 집을 팔아야 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열세인 서울 강남 3구와 일부 수도권 지역의 표심을 노린 것과 무관치 않다. 이러면서도 이 대표는 정부·여당이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에 대해서는 ‘초부자 감세’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민주당 또한 “부자 감세에만 골몰한다”며 정부·여당을 몰아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와 민주당의 주장은 기업 현장의 고충과 상속세법의 고질적 폐해를 외면한 단견이다. 수십 년 외길을 걸은 기업의 승계를 가로막는 벽을 “나 몰라라”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기업 최대 주주에게는 20% 할증까지 붙어 실제 최고세율이 60%까지 뛴다. 기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고 징벌적 세금을 매기는 탓이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물려받은 기업을 매각하거나 지분을 정부에 물납한 사례가 산업계에는 비일비재하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둔 채 표만 따지며 상속세 개편에 나선다면 성장과 친기업을 외칠 자격이 없다.
상속세 전면 폐지를 추진했던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 정권이 넘어간 영국에서는 상속세 강화 방안이 추진되면서 비상장기업과 농민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세계적 가전업체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이 “토종기업들을 다 죽인다”고 했을 정도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고 국부 이탈을 부추기는 최고세율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민주당 주장은 표퓰리즘 비판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