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뚝 섰다 "밀수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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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식민지시절 탈세자유서 시작
현대는 경제성장 막강 동력으로
노예무역·섬유산업서 술·노동력·마약까지
'지상최대 밀수국가' 미국의 이중사
………………………………………
밀수꾼의 나라 미국
피터 안드레아스|604쪽|글항아리
  • 등록 2015-04-22 오전 6:42:05

    수정 2015-04-22 오전 8:02:32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한때 나는 밀수꾼의 공범이었다.” 이건 무슨 소린가. 밀수꾼은 뭐고 공범은 또 뭔가. 얼핏 보기에 두 가지 설정이 가능하다. 밀수는 절대 좋은 일이 아니란 것, 또 잠깐이었을지언정 그 일에 동조한 과거를 반성하게 됐다는 것. 서둘러 밝혀 두자면 이렇듯 진지한 고백으로 말을 걸어오는 이는 미국 브라운대 정치학과 교수다.

어찌 됐든 그 스토리는 꽤나 궁금하다. 대학을 졸업한 즈음 젊은 시절의 그는 볼리비아와 콜롬비아, 페루를 전전하며 빈둥거리게 됐는데. 어느 날 버스를 타고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던 국경에서 한 아주머니의 부탁을 받는다. 두루마리 휴지를 좌석 아래 감춰 달라는. 고작 휴지 따위가 무슨 사달을 낼까. 흔쾌히 그러자 했다. 그런데 이것이 적지 않은 범죄라는 걸 깨달은 건 바로 얼마 뒤. 버스에 올라탄 국경수비대가 두루마리 휴지를 모조리 압수해대는 거 아닌가. 다행히 그의 엉덩이 밑에 있던 ‘밀수품’은 안전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볼리비아에서 두루마리 휴지는 코카인 산업에 쓰이고 있었던 거다. 코카 반죽을 말리거나 불순물을 거르는 과정에 요긴했다. 게다가 이렇게 완성한 코카인 원료는 대부분 미국으로 흘러들어 소비된다. 누군가의 엉덩이 밑에 놓인 채 밀반입돼서. 뒤늦게 전모를 알게 된 이 젊은 친구는 이후 ‘빈둥거림’을 철회하고 정치학자가 되면서 ‘믿어 왔던’ 미국사를 다시 들추는 계기를 마련한다. 단 하나의 강력한 키워드로. ‘밀수’다.

왜 하필 밀수였을까. 역설적이게도 밀수라는 불법무역의 중대성을 끄집어내려는 의도다. 밀수가 미국이란 나라의 탄생, 경제성장, 영토확장, 대외관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음에도 그간 각론 취급밖에 못 받았기 때문이란 건데. 장장 600페이지를 넘긴 책은 그 치밀한 구성으로 완성한 ‘밀수의 대서사시’ 미국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첫 고백을 듣고 넘겨짚었던 것과는 달리 미국사에서 밀수가 ‘최악’만은 아니었다는 사실. 밀수가 미국이란 나라에 맞서기보다 나라를 일으켜 세운 순기능이 강력해서다. 가령 이런 거다. 식민지 시절 미국은 영국에 결사항쟁을 했는데 그 이유가 밀수의 보장, 탈세의 자유를 위해서였단다. 영국군의 밀수 과잉 단속에 격분해 결국 독립전쟁까지 벌였다는 말이다. 당시 밀수꾼의 활약은 놀라웠는데 조지 워싱턴이 이끌던 독립군에 은밀하게 무기를 공급, 승리를 이끌어내기까지 한 것이다. 덕분에 아주 명쾌한 공식도 만들어졌다. ‘미국독립의 일등공신은? 밀수꾼!’ 구체적인 인물도 등장한다. 존 핸콕이다. 보스턴 상인이던 핸콕은 밀수로 떼돈을 번 사람이지만 영광스럽게도 미국 독립선언서에 일착으로 서명한 인물로 기록된다.

정황이 이러니 어찌 밀수와 미국을 떼어내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저자의 접근은 갈수록 회색빛으로 변해 간다. 밀수가 미국 건국의 위대한 목적에 이바지한 걸로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성급히 요약하자면 ‘세 살 적 밀수 버릇’을 못 버린 미국은 결국 세계 최대의 밀수국가란 타이틀을 꿰찼으며 지금껏 그 지위가 유효하다는 것.

▲“조국을 위해 꼭 해야만 했소, 밀수”

태생이 밀수였다. 그러니 밀수를 통해 경제적 토대를 다져나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가. 미국은 밀수를 통해 서부를 개척하고 영토를 확장했다. 서인도제도에서 당밀을 들여왔고 네덜란드의 화약으로 무장을 했다. 그 이전 남부 목화재배를 위해 거래하던 노예무역을 진두지휘한 것도 역시 밀수꾼. 19세기 신흥산업국으로 부상한 뒤에도 밀수의 역사는 이어졌다. 영국에서 방적기, 소면기 같은 설비를 들여왔고 전문기술자까지 ‘모셔왔다’. 물론 불법으로. 게다가 당시의 보호무역정책은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쪽으로 흘러갔는데, 그러다 보니 활성화된 것은 생필품에 대한 거침없는 밀수.

20세기 초반 대공황기 전후에 그려진 밀수의 추억은 차라리 친숙하다. 갱단이 금주령을 뚫고 펼치는 밀수의 현장은 영화처럼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이어 프랑스제 콘돔, 캐나다산 주류, 일손이 달릴 땐 엄청난 규모의 멕시코인까지 국경을 넘었다. 그러곤 마약. 현재까지 미국 밀수사의 화룡점정은 ‘엉덩이 코카인’이 찍고 있다.

▲‘밀수와 전쟁’ 벌이는 지상 최대의 밀수국가

마땅히 미국도 골치는 아프다. 그렇다면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또 전쟁이다. 세계의 모든 국가를 상대로 밀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실 이도 많이 보던 풍경이다. 오래전 영국과 죽기 살기로 벌였던 한판 아닌가. 밀수와 탈세를 위해. 이쯤에서 명확해지는 건 미국은 개국 이래 단 한 번도 밀수와 연관 없는 시대를 산 적이 없다는 거다. 당연히 당밀과 마약은 하늘과 땅의 차이지만.

저자가 방점을 찍은 건 미국이 포장지로 쓴 ‘자유와 인권의 나라’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더 이상 속지 말라는 거다. 미국은 정부조직의 확대를 이끄는 확실한 동력으로 밀수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유무역에 핏대를 세우면서 가장 살벌하게 국경을 통제한다. 영국 섬유산업을 통째 훔쳐와 산업부흥기를 이뤘으면서도 지금은 마치 지식재산권의 수호신인 양 처신한다. 정점은 ‘마약과의 전쟁’. 미국이 이 과정에서 만든 범법자 수는 서유럽 전체 재소자보다 많단다. 갈수록 늘어나기까지 한다. 1980년 4만명이던 마약법 위반자는 2010년 50만명으로 폭증세를 보일 정도.

그런데 그 여파가 가늠이나 되겠나. 수백년 묵은 미국 밀수전통이, 오늘 세계를 힘들게 하는 금융위기에 비할 바가 아니란 지점에서 저자의 목소리는 하이톤이 된다. “금융위기가 아무리 심각해도 월가를 향한 사정의 칼날은 밀수에 들이대는 칼날에 비하면 한없이 무딜 뿐이다.”

자국이기주의를 벗어던진 용기가 대단하다. 그럼에도 극적인 한방이 아쉬운 건 폭로가 곧 끝이란 것. 아무도 모르는 사이 밀수경제의 소비자로 가담한 아마추어 범법자를 양산한다고 저자는 탄식하지만 아직 그들을 구제할 방법에까지 이르진 못한 듯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건졌다. ‘역사에 대한 중증 기억상실증’에 대한 치료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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