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사퇴..51년 뱅커 인생 불명예 종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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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 웨이`의 전설에서 `영욕`의 표상으로 전락
"금융산업 발전 큰 기여"..객관적 평가 목소리도
  • 등록 2010-10-30 오후 3:11:43

    수정 2010-10-30 오후 5:54:23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올해초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4연임을 한 것이 잘못인 것 같다.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게 되면 그 밑에서 열심히 일해 달라"

라응찬 신한금융지주(055550) 회장(사진)이 30일 결국 자진 사퇴했다. 중소은행 신한을 국내 수위권 종합금융회사로 키워낸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던 라 회장이 뱅커 생활 51년 만에 `신한금융 사태`의 장본인이란 오점을 남기며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다만 등기이사직은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이 전임 행장이자 현 지주사 대표인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촉발된 `신한금융사태`는 라 회장의 영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란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20년의 장기 집권으로 후계구도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촉발된 게 `신한금융사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실패를 모르며 금융권의 대부로 자리매김했던 라 회장. 그의 찬란했던 `뱅커 인생 51년`의 영광은 단 두 달여 만에 산산조각났다. 하지만 라 회장이 우리나라 금융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이 분명한 만큼 객관적인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는 세간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 `신한의 신화적 존재` 라응찬..50년간 승승장구

라 회장은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아왔다. 1982년 점포 3개, 임직원 279명으로 출발한 신한은행을 29년 만에 총자산 313조4000억원(2010년 6월말 현재, 계열사 11개, 점포 1388개, 임직원1만8941명)의 대형 종합금융회사로 만드는데 선봉에 있었다. 
 

1938년생인 라 회장은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농업은행에 입행한 뒤 대구은행을 거쳐 제일투자금융 상무이사에 올랐다. 82년 신한은행 탄생 당시 상무이사로 창업 실무를 주도한 뒤 은행장 3연임과 부회장 2년, 지주회사 회장 4연임을 통해 20년 동안 신한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켜왔다.

그는 2001년 지주회사 설립 이후 2002년 굿모닝증권, 2003년 조흥은행, 2006년 LG카드 등 잇따른 인수합병(M&A)에 성공, `신의 손`이란 별칭을 얻었다. 이같은 성과는 주요 지주사중 은행과 비(非)은행의 가장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구성하는데 일조했으며, 그 결과 신한금융의 수익성은 지금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신한금융 내 임직원들에게 라 회장은 `범접할 수 없는 신화적 인물`로 통하는 것도 이 같은 그의 이력 때문이었다. 국내외 사외이사들 뿐만 아니라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창업그룹 재일교포 등 대다수의 주주들도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노욕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올해 3월 금융권의 예상을 뒤집고 고희(古稀)를 넘긴 고령의 나이로 금융권 최초의 4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말부터 `한국거래소 이사장 선임 사태`와 `강정원 국민은행장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라 회장의 4연임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는 적지 않았다. 대리인 비용을 발생할 수 있는 지분 없는 회장의 장기집권은 은행권 지배구조의 가장 큰 문제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팽배했다. 결국 이러한 우려는 지난달 2일 `신한 사태` 발발과 함께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 `신한 사태` 발발..장기집권의 마지막은 `쓸쓸한 퇴장`

장기집권 뿐만 아니라 차명계좌 의혹도 라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박연차 회장에게 차명계좌를 통해 50억원을 송금한 사실이 적발됐고 이를 둘러싼 최고경영진간 알력이 권력투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는 은행권에서 드물게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온 신한금융에서 최고경영진간 이전투구식 권력싸움이 벌어지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라 회장은 최근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 방침을 통보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진 사퇴`를 일축한 뒤 해외 기업설명회(IR)를 이유로 재출국하자,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는 `교만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조직안정과 소명에 전력투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직원들도 허탈감에 빠졌다. 라 회장과 신한금융은 차명계좌 의혹에 대한 소명작업에 나섰지만 금감원의 중징계는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사태를 수습에 앞장서야할 신한금융 이사회는 라 회장의 눈치 보기에만 바빴을 뿐,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지탄을 받고 있다. `신한금융사태` 발발 두 달여 만에 정기이사회를 수일 앞당겨 열었지만, 거수기 이사회란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사태가 장기전으로 치달으면서 경영진 중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룹 내에서는 `네 편 내편`으로 나뉘었고, 양 측은 서로 `네가 먼저 물러나야 한다` `3명 중 OOO은(는) 남아야 한다`며 제 밥그릇 찾기에만 몰두하는 볼썽사나운 모습들이 연출됐다. 또 국정감사와 시기가 맞물리면서 자고나면 새로운 의혹이 터졌다. 내부에 곪아있던 경영진의 각종 치부가 드러나면서 직원들마저 고개를 내저었다.

라 회장은 지난 51년의 뱅커 생활 동안 `실패`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라 회장이 승리하는 법만 배웠지 실패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신의 영욕을 위해 2인자를 내친, 또 이를 위해 3인자를 이용한 `영욕의 인물`로 평가받을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경북 상주 시골에서 태어나 야간 상고를 졸업한 뒤 각종 역경을 딛고 신한금융의 CEO까지 오른 라 회장. 그는 분명 신한 웨이(Shinhan Way)로 알려진 신한금융 특유의 문화를 정착시킨 장본인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신한금융사태`를 바라보는 금융권 안팎의 심정은 더욱 착찹하기만 하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라 회장은 우리나라 금융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사람"며 "시간이 지나면 그의 공과를 재평가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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