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진정서, 효력 있을까요?”

  • 등록 2021-01-05 오전 12:00:00

    수정 2021-01-05 오전 7:25:46

[이데일리 김소정 기자] 양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망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사건을 접한 시민들과 연예인 등은 양부모에 대한 엄벌 진정서 작성해 법원에 보냈다고 인증하고 있다. 이 진정서는 양부모 재판에서 어떤 효력이 있을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 시민들이 보낸 진정서..변호사 “양형에 영향 끼칠 수 있어”

손수호 변호사는 4일 연합뉴스TV ‘사건큐브’에서 “이 사건에서 관건이 되는 건 이게 살인죄냐 아니냐. 유죄 판결이 나오느냐 안 나오냐다. 법리적인 부분인 거다. 하지만 진정서가 아무리 들어와도 법리적인 부분엔 영향을 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단 양형에는 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손 변호사는 “양형 요소 중 중요한 게 비난의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엄벌을 요구하고 있는 정도라면 사회적으로 큰 해악을 끼쳤고, 그 행위가 나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이날 김성훈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도 MBC ‘뉴스외전’에서 “진정서는 말 그대로 의견에 불과하다. 법률적인 요건이나 구성 요건 효과는 있지 않다”라며 “다만 이 사건을 대하고 있는 시민들의 태도는 형량을 결정할 때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 정인이 양모 아동학대치사 아닌 살인 혐의 적용될까?

정인이 사건을 조사한 서울남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양모를 살인이 아닌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살인죄로 적용하려면 양모가 정인이를 죽이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사망에 이를만한 위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공
살인죄 법정형은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아동학대치사죄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크게 차이는 없다. 아동학대치사죄로도 아동학대범을 충분히 엄벌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아동학대 사건의 형량은 살인죄보다 약하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267건이다. 이 중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33건으로 전체 사건의 12.3%에 불과하다. 집행유예는 96건(36%)으로 실형보다 세 배나 더 많이 선고됐다. 아동학대 가해자 10명 중 1명만 실형을 선고받은 셈이다.

정인이 사건의 첫 공판기일은 오는 13일이다. 검찰은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할 수 있을까?

손 변호사는 “가능하다. 검찰이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했다는 건 살인죄로 기소해도 유죄 판단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라고 봤다. 이어 “정식 수사 기록을 본 건 아니지만 여러 자료를 종합해보면 살인죄 적용이 과연 불가능한 일인가? 의문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고의성이 입증되면 양모는 살인 혐의를 적용받을 수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YTN 뉴스 방송에서 “살인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고의가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죽일 작정을 하고 죽이는 고의가 있고 이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을 넘어서서 행동으로 옮겼을 때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 미필적 고의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이어 “대법원에서도 췌장 파열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던 게 3~4건 있다. 이미 췌장이 파열됐는데 그 정도의 폭행을 가했을 때 ‘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도 그걸 넘어서서 폭행을 가한 사건이었다. 분명히 16개월 된 아이에게 그 정도 폭행을 가하면 당연히 아이가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은 인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정인이의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 강한 외력으로 인해 췌장도 절단된 상태였다.

김성훈 변호사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살인죄로도 기소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보인다. 아무래도 살인의 고의에 대한 입증과 관련해선 더 노력해서 수사를 해 보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인이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남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지난해 말 전문 부검의 3명에게 정인이 사망 원인 재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사안이 엄중하다”며 “부검의 의견을 종합해 사건의 진상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에 따라 적절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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