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공무원인가[안종범의 나라살림]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등록 2024-11-28 오전 6:13:36

    수정 2024-11-28 오전 6:13:36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 공무원은 일반 직장인과는 다르다. 자신과 가족의 행복, 나아가 소속 직장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일반 직장인과는 달리 공무원은 자신의 업무 대상인 국민과 국가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공무원은 정책이 주된 업무이기에 정책을 만들 때 국민에게서 잘 들어야 하고 이를 법으로 만들 때 국회를 잘 설득해야 하며 집행할 때 국민에게 잘 전달해야 하는 의무도 지닌다.

국민은 이렇게 중차대한 일을 하는 공무원을 어려운 시험을 통해 뽑고 여러 부처에 배치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거는 기대도 자못 크다. 그런데 공무원 하면 ‘복지부동’, ‘철밥통’, ‘부처 이기주의’ 등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오른다. 공무원은 한 부처에 소속된 이후 대부분이 공무원 생활을 끝맺을 때까지 한곳에서만 근무해 국민과 국가가 아닌 오직 자기 부처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공무원이 비난받게 된 이유로 세 가지 주목할 사례를 들 수 있겠다. 첫째 사례는 자기 부처를 위해 자신이 얻고 관리하는 정보를 다른 부처와 나누지 않는 ‘정보독점’이다. 이러한 정보독점은 결국 ‘부처 간 칸막이’를 만들어 내면서 공무원업무 비효율성의 극단을 보여준다.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고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다. 둘째 사례는 정권 출범 직후부터 대통령이 나서서 강하게 추진하는 규제개혁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 결국에는 회피하는 것이다. 규제를 푸는 것은 국민과 기업을 위해 필요해도, 그러면 자신이 속한 부처나 좁게는 자기 국이나 과가 힘이 약해지고 나아가 존재가치가 떨어질까 두려운 나머지 되도록 규제를 유지하려 애쓰는 것이다.

셋째 사례는 눈치 보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공무원의 업무 대상은 크게 보면 국민, 기업, 단체, 이익집단, 언론, 정치인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들 대상 중에서 유독 언론과 정치인에게 눈치 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두 집단이 주로 공무원들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예결산 심의, 국정감사, 대정부 질문, 상임위 법안 심의 등에 공무원은 모든 걸 제쳐 두고 국회로 가서 대기한다. 자신의 장관, 차관이 받을지 모르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한 뒤 혹시 모르는 돌발질문에 대비해서 온종일 국회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언론에서 부처 업무 관련 비판 보도라도 하게 되면 이를 반박하는 보도자료나 해명자료를 내는데 총동원된다. 최근에는 직권남용이라는 사법 리스크를 우려해 복지부동 또한 더욱 심해지고 있다.

능력 면에서 국민의 상위 1% 내에 속하는 공무원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건 국가적 손실이다. 그래서 하루빨리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갖는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들이 보유한 능력을 보람되고 즐겁게 국민과 국가를 위해 발휘하게 해야 한다. 이 문제를 푸는 데는 오직 한 사람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정보독점과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기 위해 공공정보의 ‘공개-공유-활용’이라는 대원칙을 천명하고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과거에는 ‘정부 3.0’ 지금은 ‘디지털플랫폼 정부’로 불리고 있는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무는 과제가 이제 정권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이 돼야 한다.

4대 개혁은 국회라는 최종 장벽이 있지만 이 과제는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주민등록번호를 기초로 하는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험 정보 등 우리의 공공정보는 K공공정보라 할 만큼 엄청난 양과 높은 질로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이를 공개하고 공유하며 민간에서 활용하도록 하면 엄청난 경제적·사회적 이득이 생긴다. 일본이 ‘마이넘버 카드’를 만들어 기존 건강보험증을 통합하는 작업을 이제야 시도하고 있지만 그 또한 수많은 오류가 발생하면서 제대로 추진될지 의문이라는 사실에 비춰 보면 우리는 한참 앞서 있다. 여기에 각종 교육정보와 납세자료, 나아가 사법자료 등을 제대로 공개하고 공유하고 활용한다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민국이 전 세계를 주도해 갈 수 있다.

아울러 우리 공공정보가 갖는 우수성을 기초로 미국과 같이 정책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체제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미국은 2018년에 증거와 데이터를 활용해 더 효과적이고 책임 있는 정책 수립을 의무화하는 ‘증거기반 정책수립 기초법’(Foundations for Evidence-Based Policymaking Act)을 제정했다. 올해로 5년째가 된 이 법은 세 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은 모든 정부 기관이 평가담당관(Evaluation Officer)과 통계담당관(Statistical Official)을 지정해 정책에 있어서 증거기반 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도록 의무화하고 2장에서는 공공데이터를 제공하고 투명성을 증진하며 3장에서는 개인정보 보호와 통계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증거기반 정책 기본법’을 하루빨리 제정해 증거기반 정책을 만들고 평가하는 유능한 정부가 돼야 한다.

대통령이 몰두해야 하는 두 번째 과제는 규제개혁이다. 공무원의 고용주인 대통령은 규제개혁만큼은 정권 초기 슬로건으로 끝나지 않도록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서 갖은 이유로 규제개혁을 미루거나 무산시키고자 하는 공무원들의 욕구를 꺾는 강한 의지와 지혜를 보여줘야 한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와 ‘좁은 회랑’(The Narrow Corridor) 두 권의 책에서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면서도 국가의 통치 능력이 유지되는 ‘포용적 체제’와 ‘좁은 회랑’에 위치할 때 국가와 사회는 번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국민과 시장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강한 통치력을 발휘하는 건 바로 정보공유 및 활용과 규제개혁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필자는 교수 시절 늘 행정고시에 합격한 제자들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부탁하곤 했다. 소속 부처가 정해지지 않은 지금의 마음가짐을 간직하고 나중에도 계속 오직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생각하며 일하라는 것이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어느 부처 간부급이 돼 있을 당시 제자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일하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변하지 않았을 거라 믿고 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의 본모습을 보여주면서 공무원 사회가 국민 앞에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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