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위한 법치 보여준 세종대왕…'민본주의' 사법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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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제도 도입 전 백성 17만명 의견 수렴
부민고소금지법 개정해 백성 권익 보호
중죄인 가족 연좌제 제한…앞선 인권 의식
현대 법조인에게도 귀감되는 사법 정신
  • 등록 2025-05-15 오전 5:25:00

    수정 2025-05-15 오전 5:25:00

[편집자 주] 5월 15일 세종대왕 탄신일을 맞아 ‘재판관으로서의 세종대왕’을 살펴본다. 지난해 법원행정처가 발주하고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세종대왕의 재판관으로서의 면모와 사법제도 운용사례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①세종대왕의 법철학과 재판 원칙 ②인권 보호 정책과 과학적 재판 체계 ③민본주의 법치와 현대인들에게 주는 교훈을 다뤘다. 세종대왕의 사법 정신을 되돌아보고, 현대 사법 제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세종대왕 탄신일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세종대왕 동상 등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세종대왕의 법제 개혁에는 민본주의적 정신이 깊이 배어 있다. 그는 새로운 조세제도인 공법(貢法, 토지에 대한 세금 제도)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전현직 관료와 함께 전국 8도에 걸쳐 지방관과 일반백성들 약 17만여명의 의견을 조사하여 민본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백성의 의견을 직접 들으려는 세종의 자세는 후대로 이어졌다.

세종대왕은 입법 과정에서도 민본주의 원칙을 적용했다. 법의 내용은 양법미의(良法美意), 즉 법의 목적이 민본주의를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봤다. 고법(옛날부터 전해 오는 법)일지라도 백성에게 해악이 되는 법이 아니어야 하며, 법의 바탕은 민신(民信)·민지(民志)라고 인식했다. 이는 최종적으로 입법의 근거로 작동했으며, 조선건국의 이념적 바탕이었다.

법제 개정·신문고 통해 백성도 목소리 낼 수 있게

세종대왕은 중세왕조를 지탱시켜주는 신분차별 제도에서 나온 ‘부민고소금지법(部民告訴禁止法, 조선시대 하급 서리나 일반 백성들이 경외의 상급 관리들에 대해 고소를 금지하던 법제)’의 개정을 시도했다. 세종대왕은 신분제를 주창하는 기득권 세력과 논쟁을 벌이며 수령들의 백성에 대한 침탈을 방지하거나 약화시키려 했다. 그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고소하는 것을 금한다면 서민들의 억울하고 원통한 뜻을 펼 곳이 없을 것”이라며 타협책을 제시했다.

결국 ‘부민고소금지법’은 모반대역죄나 불법살인죄의 경우는 물론 적용되며, 수령의 비리, 불법행위, 오판 등으로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경우에도 그 당사자(백성)가 그 상급기관에 호소하는 것을 보장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신분제적 한계 내에서나마 횡포한 강자에 억눌린 약자인 백성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주려는 조치였던 것이다.

조선에서 소원 제도는 태종 때 처음으로 설치된 신문고에서 비롯됐다. 세종 때에는 부민고소금지법의 시행과 함께 신문고 제도 운영에 큰 변화를 보이게 된다. 즉, 신문고 제도가 사회적 언론 차원에서 개인적 사법 차원으로 그 역할이 축소됐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세종은 신문고 제도가 철저히 유지되도록 했고, 그를 통해 아랫사람들의 사정이 사헌부와 형조 중앙 관서에 도달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유교적 신분 질서를 강조하는 부민고소금지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신문고 제도가 그대로 존속됨으로써 사법적 차원에서 잘못된 형사재판을 시정할 수 있는 도구로서 그 역할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면, 백성들에 대한 신의 중시…천명·흠휼사상 바탕

사면은 죄인을 석방하는 원칙적·일반적 제도로 사(赦), 유(宥), 또는 사유(赦宥)라고 하였다. 사면을 내리는 권한은 오직 국왕에게 있으며, 고대로부터 천재지변이 있거나 국가나 왕궁에 애경사가 있는 경우에는 사면령을 내려왔다.

사면에 대해서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사면 때마다 그 적용의 범위를 두고 논란이 그치질 않았고, 왕도(王道)가 아닌 권도(權道)에 가까운 정치도구로 이용됐음을 부인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세종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은 사면을 ‘군자에게는 불행이고, 소인에게는 다행인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세종은 사면에서 백성들에 대한 신의를 중시하고 사면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중시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세종의 사면 정책은 기본적으로는 유교의 천명사상(인간이 따라야 할 도리와 자연의 법칙)과 흠휼사상(죄수에 대해 신중히 심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예주법종(禮主法從)의 법사상이 반영된 ‘대명률’을 주요한 판단기준으로 삼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친 잘못이 자식 발목 잡지 않게…연좌제 제한

세종대왕은 연좌(緣坐)의 제한을 통해서 휼형사상을 실현하려고 했다. 세종은 원칙적으로 반역죄나 모반죄와 같은 대역죄인을 제외하고는 중죄인의 자손이나 가족들에게 연좌제를 적용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부친의 잘못으로 자식이 벼슬길에 제한을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고, 집단 강도를 처형할 때에도 그 가족들에 대한 연좌를 최소화하고 여성들은 남자들과 달리 죄과를 논하지 않는 등의 조처를 통해서 백성의 고충을 덜어주고자 노력했다.

고문·형벌 남용 제한…인권 침해 최소화

세종은 ‘대명률’에 입각해 신장(訊杖, 몽둥이)의 규격을 일정하게 정했으며, 피의자를 심문하며 신장으로 가격하는 신체 부위도 보다 안전한 쪽으로 한정했다. 재판이 마무리되면서 형벌을 집행할 때는 신장을 친 만큼을 감해주도록 배려했다.

이러한 조치는 당시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무자비한 고문과 형벌의 남용을 제한하고, 최소한의 인도적 조치를 보장하려는 시도였다. 세종은 피의자의 자백을 얻기 위한 고문이 불가피하다고 여겨지던 시대에 그 사용을 규제하고 표준화함으로써 최대한 인권 침해를 줄이고자 했다.

세종대왕 사법 정신의 현대적 의미

세종대왕의 사법 정신은 현대 법치주의와 많은 면에서 공명한다. 그가 추구한 ‘억울함 없는 판결’, ‘인권 존중’, ‘법 앞의 평등’은 현대 사법 제도의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현재의 법조인들이 과거의 세종대왕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많다. 그는 법이 백성의 권익 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민본주의적 관점을 견지했으며, 피의자와 피고인의 인권을 존중했다. 또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에 기반한 재판을 추구했고, 죄형법정주의를 준수했으며, 사법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중시했다.

지난달 21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세종대왕 모습을 한 모래조각 작품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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