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7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삼성전자 ‘더 퍼스트 룩 2018 뉴욕’ 행사장에서 처음 본 그의 모습은 이랬다. 검은 뿔테에 푸른 세미정장, 헤드셋 마이크로 한껏 멋을 부렸지만,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단상에서 QLED TV 신제품을 소개하는 어색한 한국식 영어발음은 그를 더욱 토종 한국인으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25일 별세한 고(故)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인상이었다. 당시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장(사장) 5개월 차였던 한 부회장은 막 뉴욕특파원 5개월 차에 접어들던 필자에게 와인 잔을 건네며 “한국에서 소주와 김치를 싸올 걸 후회한다”고까지 했으니, 더는 ‘토종 한국인’ 얘기를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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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이날 한 부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지난 37년간 회사에 헌신하신 고인은 TV 사업 글로벌 1등을 이끌었고,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세트부문장 및 생활가전(DA)사업부장으로서 최선을 다해오셨다”고 했다. 실제 그는 1988년 삼성전자 영상사업부 개발팀에 입사한 이래 30년 넘게 줄곧 TV 한우물만 팠던 걸로 유명하다.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상품개발팀장, 개발실장, 사업부장 등 그의 이력 모두 VD로 채워져 있다. 입사 이후 석·박사에 욕심을 내지 않았던 것도 오로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한 부회장이 삼성전자 대표이사에 오른 2022년 필자는 전자팀장으로서 그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4년 전에 비해 홀쭉해진 한 부회장을 보며, 질문 대신 “건강 잘 챙기세요”라는 덕담을 건넸었다. 당시엔 ‘송곳 질문을 던질 걸’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나름 잘한 것 같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와의 두 번의 만남, 아무래도 평생 각인될 것 같다. 토종 한국인이자 삼성맨인 고 한종희 부회장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