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위기에 능한 '경제금융 뇌섹남'[대통령실 백일열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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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때 '차관급' 중용, 李정부 때는 컨트롤타워
대미 무역협상 선두에 섰지만…고된 줄다리기
새롭게 형성되는 대외 질서 속에 韓경제도 숙제
  • 등록 2025-10-08 오전 10:00:00

    수정 2025-10-12 오후 3:53:41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새 정부를 꾸려 출범시켜야 했던 이재명 대통령. 그는 비서실장에 이어 정책실장을 발표했다. 주인공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문재인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 제1차관까지 지내며 중용됐던 그에게 다시 기회가 온 것이다. 당시 경제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던 이 대통령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가까이서 겪었던 김 실장의 위기 관리 능력이 필요했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민간으로 자리를 옮겼던 김 실장은 2025년까지 독특한 경력을 쌓았다. 가상자산 업체에서 리서치 업무를 맡으며 스테이블코인 입법화 등을 연구한 경험이다. 이는 이후 이재명 정부가 가상자산 정책을 어떻게 펼칠지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이력으로도 해석됐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8.20/뉴스1
미 관세협상, 주목받는 결과를 내놓았지만...

그가 처음 주목 받았던 때는 7월 31일 아침이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진과의 지리한 협상 끝에 ‘15% 관세율’에 대략적인 합의를 본 것이다. 앞서 일본이나 유럽연합(EU)이 맺은 협정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끝날까 노심초사하던 시기였다.

당시에도,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정부는 불리한 위치에서 미국과 협상을 해야 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완화할 만한 ‘우리 조건’을 찾아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의 고심도 여기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심도 있게 다뤄진 분야가 조선업이었다. 한국 조선업은 양과 질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6월 나토회의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을 만나 한국 조선업에 큰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김 실장은 이 점에 착안해 ‘미국 조선업을 한국이 살린다’는 논리로 미 행정부를 설득했고, 결국 대략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그때 김 실장은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을 보였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도 현금 투자가 아닌 대출·보증 형태로 합의됐다고 설명했다. 모두 그렇게 될 것이라 믿었지만, 상대는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만만치 않은 트럼프의 ‘흔들기’

트럼프 대통령과 이 대통령 간 정상회담까지 예정돼 있던 2025년 8월, 협상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졌다. 이미 합의한 내용 외에 또 다른 조건을 요구하며 미국 정부는 압박 수위를 높였다. ‘한국 안보를 미국이 상당 부분 책임지고 있다’는 인식에 기초해, 이를 금전적 대가로 환산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한미 정상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됐다. 김 실장은 산업자원부, 외교부 등 관계 부처 장관들과 조율하며 협상에 뛰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SNS 메시지는 양국 관계를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물밑 접촉과 설득, 그리고 이 대통령의 기민한 대응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7월 30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논리가 매개체였다면, 8월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의 피스메이커’가 화두였다. 노벨평화상 수상을 갈망하는 그의 성향을 파고든 전략이었다.

이렇게 8월 한미 정상회담은 일단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막판 합의와 세부 조율만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상황은 돌변했다. 미국 이민 당국이 현지 한국인 근로자를 대거 체포한 것이다. 현지 공장 건설을 위해 파견된 인력을 구금한 처사는 ‘미국에 투자하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됐다.

여기에 3500억 달러 규모 대미투자펀드의 현금 투자는 한국 정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요구였다. 김 실장 등은 이 부분에 대응해 무제한 한미통화스와프라는 새 카드를 제시했다. 한국의 외환 상황을 고려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미 행정부는 안심할 만하면 새로운 조건을 내놓으며 한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그때마다 김 실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대응책을 마련해 나갔다.

만만치 않은 국내외 경제

새롭게 재편되는 대외 질서 속에서 김 실장은 한국의 저성장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 불안이 심화되면서 한국 경제가 받는 부담은 커지고 있다. ‘저성장·고금리·고부채·대외압박’이라는 복합위기가 현실화된 셈이다.

단기적으로는 경기 방어가 급선무다. 고금리와 투자 위축으로 민간 활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 집행은 경기 하강 속도를 늦추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하지만 단순 지출 확대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지출의 ‘질’과 ‘방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김 실장이 설계할 확장재정의 틀은 구조 개혁과 미래 성장 동력 발굴로 이어져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복지 지출의 지속 가능성이 도전 과제다. 급속한 고령화로 연금·의료 지출 수요가 커지고 있어 장기적 재정 구조 개편 없이는 재정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김 실장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정책적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녹색·디지털 전환 투자가 핵심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AI 전환(AX), 탄소중립, 반도체·배터리 전략산업 지원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김 실장은 산업·금융 정책을 아우른 경험을 살려 공공·민간 합동펀드, 정책금융기관 확대 등을 통해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방안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수립 이래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편한 시기를 맞지 못했지만, 지금만큼 어려운 국면도 드물다. 김 실장이 원했던 정책을 펼치기도 전에 ‘소방수’ 역할만 하다 임기를 마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민관에서 경력을 쌓은 그에게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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