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고독]①나혼자 산다…관계를 끊는 사람들

IT발달이 낳은 '초(超) 연결사회'
알맹이 없는 관계 피로감 커져
72% "주변 사람 정리 원한다" 답해
사회관계망의 질 갈수록 악화 등 원인
  • 등록 2017-10-20 오전 6:00:01

    수정 2017-10-20 오전 9:10:18

자발적 고독의 시대(그래픽=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1. 대기업 직원인 A씨는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서비스가 생기면서 회사 팀장의 지시가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고, 팀장이 페이스북 친구신청을 할 때는 거절하기도 난감하다”면서 “서로의 사생활에 대한 배려나 예의에 대한 고민 없이 기술만 도입된 우울한 결과”라고 말했다.

2. 김민훈 씨는 ‘배찌’인형탈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그가 인형탈 안에 자신의 숨겨버린 이유는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유일하게 인형탈을 벗는 순간은 어두운 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이후다. “몸은 힘들지만 인형탈 안이 더 행복하다”는 그는 “인형탈을 쓰고 있으면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현대는 초(超)연결사회이다. 사람 간의 연결은 물론이고 사람과 사물, 심지어 사물 간의 연결 등 연결 영역이 초월적으로 늘어났다. 이전에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의 관계, 그리고 직장에서의 관계망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정부통신기술(IT)의 발달로 시간·공간·지식 관계가 크게 늘어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페이스북 등의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의 일상 환경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이다. 하루에도 SNS로 수백명의 친구와 연결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양적 관계 팽창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소위 인간관계의 권태기인 ‘관태기’(관계+권태기)인 것이다. 관태기는 알맹이 없는 인간관계에 염증과 회의를 느끼는 상태를 뜻한다. 자발적으로 인간관계를 정리하거나, ‘홀로’ 지내기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일종의 ‘자발적 고독’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발적 고독’은 ‘고립’과는 다른 개념이다. 자발적 고독이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능동적인 행위이지만, 고립은 타인에 의해 따돌림을 당하는 수동적인 행위에 가깝다.

인간관계정리방식(그래픽=이동훈 기자)
◇ 그들은 왜 ‘고독’을 선택하나

당신은 왜 ‘사회적 단절’을 선택했나(그래픽=이동훈 기자)
이데일리가 취업포털 커리어와 함께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3일까지 성인남녀 637명으로 실시한 ‘당신은 왜 사회적 단절을 선택했나’라는 설문조사에서 ‘사회적 관계를 정리를 고려했거나 실제로 한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무려 462명(72.53%)에 달했다. 그 이유로는 ‘살아보니 결국 나의 즐거움이 최우선이어서’라는 답변(134명)이 가장 많았고, 이어 경제적인 문제(84명), 직장상사 등 꼰대문화(69명)가 뒤를 이었다. 이 외에도 개인시간을 찾기 힘든 직장생활, 취업준비나 공부 등 개인적 활동이 바빠서 등의 이유도 있었다.

인간관계 줄이기, 즉 자발적 고독을 선택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심원섭 목포대 교수는 “현대인들은 시간적·물질적 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억지로 만남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이렇게 관계 지속을 원치 않는 사람과 함께 하며 돈이나 시간을 쓰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인맥을 정리하려는 시도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수년 간 이어져온 청년들의 ‘혼밥’, ‘혼술’, ‘혼여’ 문화의 확산도 바로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혼자 되기’는 양적 관계의 팽창에 대한 피로감에서 벗어나 질적 관계로의 전환이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과 팍팍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 유행에서 한 발짝 떨어지는 시간,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을 더 사랑하고, 평온함을 되찾고,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을 갖는 통제가 가능한 자발적 선택인 것이다.

◇ 사회 관계망 붕괴...개인의 삶과 질 위협

자발적 고독이 사회적 단절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앞서 말한 김민훈 씨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을 인형탈 속에 숨겨버렸다. 자발적 고립인 셈이다.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세상과 거리를 둔다. 그의 행동 양식은 일본에서 한때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던 ‘히끼코모리’와 매우 흡사하다. 히끼코모리는 상처를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인간형을 말한다. 우리말로 ‘은둔형외톨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2015년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 2015)’를 보면 한국인은 문제가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친구나 친척, 이웃이 있느냐는 문항에서 조사대상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있다”고 답한 사람은 72%에 불과했다. OECD 회원국 평균(88%)에 한참 뒤졌다. 더 큰 문제는 사회관계망의 질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3년에는 80% 수준이었는데 불과 2년 사이에 8%포인트나 하락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의 소멸은 도시화와 압축된 산업화, 핵가족화, 개인주의화, 인터넷의 일상화 등 사회구조 및 생활상의 변화가 주요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원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연구본부장은 “오늘날 한국사회처럼 경쟁을 부추기는 각박한 사회분위기 속에서는 생존을 위해 저마다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적어지고 관계가 도구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사회 관계망의 붕괴는 결국 개인의 삶의 질과 사회통합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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