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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3) 터키 대통령이 `21세기 술탄`에 등극했다. 이슬람교 종교적 최고 권위자인 칼리프로부터 부여받는 칭호로 세속 이슬람 국가에서 정치와 행정, 군사상 실권을 모두 장악한 지배자를 뜻하는 술탄은 에르도안의 최종 꿈이었다. 그리고 16일(현지시간) 치러진 터키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통과되면서 그 꿈을 이루게 됐다. 다만 찬반 표차가 미미한데다 조작 시비까지 붙어 향후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이날 개헌 국민투표는 찬성 51.32%, 반대 48.68%(개표율 98.2%)로 가결됐다. 투표 마감 직후 실시된 출구조사에선 찬성이 63%로 나타났지만 개표가 진행되면서 격차는 좁혀졌다. 게다가 양대 도시인 앙카라와 이스탄불에선 반대표가 찬성표를 앞질렀다.
이번 개헌안은 총리직을 폐지하는 대신 부통령직을 신설해 대통령과 부통령에게 그 권한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재 4년마다 치러지는 총선을 5년으로 고쳐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치르도록 한다. 대통령은 장관을 비롯한 공직자 임면권과 의회 해산권, 의회 동의없는 국가비상사태 선포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며 정당 참여도 가능해진다. 개헌이 성공되면 2019년 발효되는데 이번 개헌안 통과로 지난 2003년부터 터키를 통치해온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론적으로 2029년까지 장기 집권이 가능해졌다.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 에르도안은 터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케말 파샤(케말 아타튀르크) 이후 지켜온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 전통에서 벗어나 이슬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있다. 그는 공공장소와 대학에서 히잡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지난 2008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등 역사의 수레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군부가 지난해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 중 하나도 에르도안의 지나친 이슬람화에 대한 경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대로 에르도안은 쿠데타로 인해 피폐해진 관광산업과 둔화되고 있는 경제 성장을 되돌기 위해 정치적 안정이 급선무이며 이 때문에 개헌이 필요하다고 호소해왔다.
그러나 비날리 일디림 터키 총리는 “오늘로써 터키 민주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졌다”며 “우리 모두 형제이고 하나의 몸이며 하나의 나라”라며 국민투표로 인해 분열된 터키의 통합을 호소했다.